▽세습의원을 몰아낸다 해서 상원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임명귀족이 상원을 유지하게 된다. 개인이 탁월한 공적을 쌓거나 사회적 존경의 표상으로 인정된 경우 왕과 내각이 귀족칭호를 내린다. 출생만으로 세습귀족이 되는 데 비하면 능력과 노력을 인정받는 임명귀족의 경우 상원의원직은 정당한 보상에 속한다 할 수 있다. 그 역할 또한 공동체 발전을 위해 기대할 만하다.
▽세습의원 퇴출의 주역은 ‘제3의 길’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토니 블레어 총리다. 신진 정치세대이면서도 급격한 변혁을 추구할 것 같지 않은 이미지를 풍겼던 그였다. 문제는 세습귀족들의 상원 의정활동이었다고 생각된다. 상원의원 1천1백65명중 의사당에 나타나는 수는 고작 2백여명으로 대부분 임명귀족들이다. 세비는 안 주지만 역사적 유물 이상의 의미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귀족은 정파로부터 자유로워 옳은 판단을 내린다는 긍정론도 있다. 여유가 있어 교육을 잘 받은 귀족이 지혜가 뛰어나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관점에 따른 입장이다. 그러나 프랑스 독일 러시아는 혁명의 이름으로 귀족제를 폐지한 지 오래다. 영국은 이번에도 임명귀족의 종신 상원의원제를 존속시켰다. 노동당의 ‘정략개혁’비판도 있지만 실리주의 나라 영국에서 실용성을 잃은 세습귀족의 퇴출은 시간문제였다.
김재홍<논설위원〉nieman96@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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