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이문열씨와 그가 세운 현대판 서당 ‘부악문원’ 숙생(宿生)들의 공부시간.훈장인 이씨만 제법 정갈한 한복을 입었을 뿐 숙생들은 모두 제멋대로다. 일주일에 이틀,이렇게 모여앉아 사서(四書)와 ‘플라톤’을 읽는다.
나머지 시간은 모두 자유시간. 각자 자기방에서 책을 읽건 글을 쓰건 도를 닦건 마음대로다. 그렇게 이씨가 부악문원을 끌어온지 벌써 1년이 다 되어간다. 25일까지 2기 숙생을 모집한다. 0336―636―8861
습작기 시절 이불보따리와 헌책꾸러미를 싸매고 ‘지상의 방 한칸’을 찾기 위해 밀양 안동 김해 등지를 떠돌았던 이문열씨. 지난해 초 경기 이천의 부아악(負兒岳)산자락에 우람한 ‘성채’를 하나 짓고 2년과정 숙생들을 받아들였다. 수업료는 물론 먹고 자는 것이 완전 무료.
“글 쓴다고 하면 집안에서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다가 얼마 못버티고 꿈을 접어버리기 십상이죠. 그래서 재능있는 후학들에게 누구도 구박하지 않는 편안한 공간, 충분한 책, 그리고 분위기를 제공한 겁니다.”
1기생 5명은 모두 20대후반. 저마다 살아온 이력이 다르고 무엇 하나 닮은 게 없는 사람들이 모였다. 원고지 1백장 분량의 자기소개서 심사 및 한시와 영어독해 실력을 테스트하는 면접시험을 거쳐 30대 1이 넘는 경쟁률을 뚫고 들어온 ‘물건’들이다.
썩 괜찮은 대기업을 다니다 홀연히 사표를 던진 이도 있고 대통령이든 총리든 한국의 최고권력자가 되는 게 꿈이라는 고시 준비생도 있다. ‘애인있음’을 공개선언하고 거리낌없이 같이 공부하는 여자 숙생도 있다. 이름은 절대 밝히지 말아달라는 게 숙생들의 ‘보도지침’.
스승을 닮아 무척이나 씻기를 싫어한다는 것이 이들의 공통점. 또 하나, 술이라면 모두 주선(酒仙)의 경지에 근접해 있다.
저마다 일과가 달라 공부시간을 제외하곤 한데 모이기가 어렵지만 술 마시자는 말만 나오면 5분내에 전원 집합한다. 최소한 일주일에 한번은 필름이 끊길 때까지 마신다. 그리고 나선 다음날 하루종일 죽은 듯이 누워있다가 정신이 돌아오면 다시 각자의 일에 몰입한다.
두명은 소설, 한명은 시나리오, 또 한명은 희곡. 이렇게 4명은 대충 갈 길을 정했지만 정치지망생만은 아직도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있다. 지금도 사법고시를 준비하면서 대학원 공부도 하고 글도 쓴다.
정치지망생은 들어온 지 몇달만에 술을 마시고 주정을 부려 스승에게 불려간 적이 있다. “내가 나가라고 하면 나갈 거냐”는 스승의 한마디에 그는 1주일동안 ‘단식투쟁’을 벌였다.
숙생들은 ‘작가 이문열’에 대해 생각들이 다르다. 열렬한 숭배자가 있는가 하면 스승의 작품은 한권 밖에 읽지 않았으면서도 매우 비판적인 견해를 갖고 있었던 이도 있다. 얼마전 한 숙생은 스승에게 “이제 문학상 같은 것은 그만 받으라”고 점잖게 충고하기도 했다. 그러나 ‘인간 이문열’에 대해서는 찬양일색이다. 한 숙생의 주장. “선생님은 한마디로 ‘정(情)의 인간’이죠.새벽 두세시에 딸기 먹으라고 곤히 잠든 사람을 깨우는 정도니까요.”
이들은 이씨가 부악문원을 열어 ‘새끼 이문열’을 키운다는 세간의 곱지 않은 시선에 대해 펄쩍 뛴다. “문학에서 아류(亞流)는 영원한 이류(二流)일 수밖에 없는데 우리가 ‘새끼 이문열’이 돼서 뭐하겠냐”는 것.
지난해 말 숙생들은 모두 신춘문예에 응모했다. 결과는 전원 낙방. 또한번 술판이 벌어졌고 한나절을 골골거린 뒤 모두 잊었다고 한다. 1년 뒤 ‘하산(下山)’할 즈음을 기약하면서.
〈이천〓이철희기자〉klim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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