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한국이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국제사회에서의 신뢰구축이 기본이므로 무엇보다도 국제통화기금(IMF) 등과의 약속을 꼭 준수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와 관련해 정부당국자의 확약과 성실한 이행이 필요하지만 정부와 그 당국자들은 항상 교체되는 것이므로 그들의 의지표명만으로는 장기적 신뢰구축에 부족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진정한 근본대책은 국내법제도를 투명하고 누구나 쉽게 접근 가능하도록 개혁하고 이를 인치(人治)가 아니라 법치주의 원칙에 입각해 윤리적으로 건전하게 운영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지름길이라는 데에 공감했다.
▼신뢰 척도는 法투명성
이런 논의는 작년 빌 클린턴대통령이 중국방문시 법률개혁을 유난히 강조한 것과도 일맥상통한다. 외국과 거래 또는 투자하고자 할 때 그 나라의 부패한 집권층과 적당히 흥정해 단기에 한 건 성사시키려는 의도가 아니라면 그 나라의 관계법령과 제도가 어떻게 되어 있는지, 법원 검찰 경찰 행정부공무원 등 법집행기관이 건전하고 부패하지 않았는지, 법이나 계약이 제대로 이행되는지, 그리고 분쟁이 발생하는 경우 그 해결과정이 공정하고 투명한지가 최대의 관심사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치적으로 무리하게 법을 개폐 또는 해석하거나, 정부가 높은 사람의 분부대로 법에 분명한 근거도 없는 행위를 계속하거나, 관리들이 지나친 사대주의 아니면 불필요한 국수주의적 태도를 보이면서 경거망동하면 국제거래의 기본인 신뢰가 무너지고 경제활동의 안정성과 예측가능성을 해치고 만다. 또한 분쟁해결이 윤리적으로 건전한 판사 검사 변호사에 의해 공정하고 투명한 절차에 의해 이뤄지지 않는다면 투자액을 손해보고라도 철수해 버리는 것이 외국투자가의 생리인 것이다. 그래서 외국기업인들은 반드시 먼저 상대 국가의 제도, 법률환경 및 사법부의 현황을 조사하여 과연 이 나라가 높은 분의 말 한마디에 울고 웃는 나라가 아니고 얼마나 법의 지배가 실현돼 안심할 수 있는지를 가늠해본다.
그런데 현 정부는 그동안 국난을 극복하고자 밤낮으로 노력해 가시적 성과를 올렸지만 그 형태와 과정이 외국투자가를 안심시킬만큼 항상 법치적이지는 못하였다. IMF체제를 벗어나기 위한 정부의 수많은 개혁조치들은 근거법규가 있고 또 그에 합치되는지 꼼꼼한 법률검토를 바탕으로 투명하게 취해졌다고 보기 어렵다.
정치인과 관료로만 구성된 외채협상대표단은 월스트리트로 달려가서 국제금융을 아는 우리 법률전문가에게 자문하기보다는 미국변호사를 선임해 거액의 보수금과 훈장을 줌으로써 결국 국내의 법률가들을 차별하였다. 뿐만 아니라 단기외채의 변제기한을 연장받았을뿐 원금의 일부를 탕감받지도 못한 채 이율만 올려주고 돌아왔다. 결국 정부 스스로가 법치 계약과 국제협상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고 법률전문가의 올바른 활용을 모른다는 것을 보여준 예라고 할 수 있다.
중요한 정책결정과정에서 법률검토는 배제되고 간혹 개업변호사가 외롭게 무슨 위원회에 장식품으로 위촉되어 있거나, 안면을 통해 간단히 공짜로 법률검토를 해달라는 식의, 로펌을 귀찮게 하는 관리들의 자세는 이제 지양되어야 한다. 책임자의 무분별한 발언보다는 개혁조치를 뒷받침하는 관계법령의 제정이나 개정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하고 절차상 흠결없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
▼사법부 윤리 회복해야
의정부를 거쳐 대전으로 파급된 사법부 오욕사건은 외국에서 질문을 받고보니 창피하다거나 소수의 법률가집단의 독점과 자만, 시대정신의 망각을 비난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다. 물론 과감한 법조개혁이 즉각 필요하지만 우선 이같은 스캔들의 국제적 파장은 참으로 크고 오래 간다. 외국투자가의 입장에서는 다른 후진국도 모두 제공하는 단기적인 조세감면 등 투자유치책보다는 사법부의 윤리적 건전성 및 공정성과 법률가 집단의 전문적 기능이 장기적으로는 더 매력있는 투자유인이 된다는 그날의 결론은 지금껏 자괴감과 함께 머릿속에 남아 있다.
송상현(서울대교수·법학 美하버드대 교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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