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재벌의 외화빼돌리기

  • 입력 1999년 2월 11일 19시 26분


신동아그룹 최순영(崔淳永)회장이 외화도피 등 혐의로 검찰에 긴급체포됐다는 소식은 충격적이다. 본인은 혐의내용을 강력히 부인하고 있다지만 수사내용이 사실이라면 매우 실망스러운 일이다. 그동안 최회장이 신망받는 기업인이었다는 점과 신동아그룹의 사회적 역할을 고려할 때 안타까운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유가 무엇이건 외화를 불법으로 해외에 빼돌렸다면 이는 기업인이 사회적 책임과 윤리를 포기한 것으로밖에 볼 수 없어 엄한 법적용이 요구된다.

기업인들의 외화빼돌리기는 최회장의 경우가 처음이 아니다. 같은 혐의로 사법처리를 받은 재벌이 더러 있었고 회계의 투명도가 낮은 중소기업들 사이에는 달러 빼돌리기가 유행처럼 번지다가 처벌을 받은 경우도 있었다. 국민의 시선이 미치지 않는 곳에서 혼자 호사스러운 생활을 하려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이는 기업의 종업원을 포함한 전체 국민에 대한 배신행위이다. 일부 악덕 기업인들의 이같은 극단적 이기주의는 사회구성원들의 근로의욕을 떨어뜨리고 계층간 불화를 촉발시킬 뿐이다. 기업인에게 차원높은 윤리가 강조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외화의 밀반출입을 금하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다. 국내 통화를 교란시켜 경제적으로 여러 악영향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고 나라살림의 기초적 체질을 약화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회사가 번 돈을 개인이 외국으로 빼돌리면 기업의 경쟁력이 약해지고 주주들의 권익이 침해당할 수 있다. 같은 논리로 최회장의 경우도 국민경제 전체에 손실을 줄 수 있다는 차원에서 비판의 대상이다. 경제인들은 사욕에 빠지기 전에 스스로 사회적 책무를 생각할 줄도 알아야 한다. 악용될 소지가 있는 제도가 그대로 존속되고 있다면 이 또한 이번 기회에 보완작업이 필요하다.

그동안 이 사건을 다뤄온 검찰의 태도에도 석연치 않은 점이 있다. 작년 4월 처음으로 수사에 착수해 일부 혐의사실을 확인하고도 검찰은 신동아그룹이 외자유치를 추진중이라는 이유로 수사를 유보해왔다. 외자유치 노력의 진위여부는 불분명하지만 결과적으로 검찰의 수사중단은 신동아그룹에 시간만 벌어주는 데 불과했다. 이번 수사재개가 최근 평검사들의 서명파동과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고 보면 최회장의 사법처리가 검찰중립의 첫출발이 될지는 지켜볼 일이다.

때마침 전경련이 투명경영과 건전한 정경관계 등을 내용으로 한 기업윤리헌장을 채택했다. 비리를 배제하고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겠다며 자율정화를 선언한 것은 바람직하다. 그러나 선언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실천이다. 기업인들이 진심으로 과거를 반성하고 헌장을 준수할 때 최회장 구속처럼 부끄러운 사건은 재발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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