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윤형섭/여야총재, 易地思之의 자세로

  • 입력 1999년 2월 11일 19시 26분


오늘의 한국정치는 분명한 파행이다. 야당은 여당이 제안한 IMF환란청문회를 거부했고 여당은 야당이 제안한 임시국회를 거부했다. 그래서 국민회의와 자민련의 공동여당은 야당없이 단독으로 청문회를 운영해왔고 야당은 단독으로 임시국회 개회식도 못하고 의원총회후 정부규탄만 하고 말았다.

▼ 파행정치 이젠 끝내야 ▼

여야가 총무회담을 갖는 등 대화테이블에 앉는다니 그나마 다행이기는 하나 파행임에는 틀림없다. 국회 환란특위는 김영삼(金泳三)전 대통령의 청문회 출석을 요구했으나 그는 산행으로 응답했고 다시 국회증언 및 감정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다 했더니 이번에는 폭발성 기자회견을 갖겠다고 응수했다가 이를 연기했다. 이 또한 파행이다.

오늘날 국민의 눈에 비친 정치판은 합리적인 잣대로는 설명이 안된다. 세풍, 총풍, 대선자금 출처시비, DJ 비자금의 폭로 조작설, 야당의원의 체포 동의안과 법무장관 해임건의안의 처리전략, 그런 상황속에서 피어나는 여야 총재회담을 위한 막후협상과 전국을 순회하며 벌이는 야의 장외투쟁과 여의 장외비난, 이처럼 한국정치가 극한 대결로 치닫는 것은 여야간에 존재하는 극도의 불신과 이로 인한 불안 공포에도 그 원인이 있다 하겠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언제나 선명성을 내걸고 큰목소리를 내며 양극으로 달려야만 당내 리더십이 확보되는 한국정치의 낙후된 문화적 특성에도 그 원인이 있다.

그러나 우리네의 그러한 정치문화적 속박에도 불구하고 최근 국가신인도 조정을 위해서 현지 실사차 내한한 무디스사와 S&P사의 대표앞에서 오로지 국익을 위해서 여당과 정부정책을 찬양하고 빅딜을 지지한다고 당론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발언을 하고 고민하는 야당 정책위원회 의장의 태도는 국익 제1주의를 몸으로 실천한 사례로서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다.

오늘과 같은 정치적 혼미속에서 여야 총재회담에 응할 것인가 말것인가도 그처럼 국익 제1주의의 입장에서 판단되어야 할 것이다. 바로 이점에서 지난날 유석 조병옥(趙炳玉)박사가 지금도 우리들 가슴속에서 빛나고 있는 것이다. 우리 국민은 여야 수뇌가 성공적인 회담과 발전지향적인 합의도출을 통해서 국내정치의 안정은 물론 외국투자가들의 불안감을 덜어주고 나라의 신인도를 높여 환란을 조기에 극복하는 전기를 만들어 줄 것을 희구하고 있다. 그래야 국익이 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당은 총재회담의 선행조건으로서 여당이 정계개편구상과 야당의원 영입계획을 포기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대해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신임 정무수석을 통해 선행조건을 수용할 뜻을 밝혔으나 이회창(李會昌)총재가 가지고 있는 불신과 불안의 벽을 뚫지는 못했다. 그러나 김대통령의 수용약속에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약속의 내용이 김대통령이 틀림없이 지킬 수 있는 성질의 것도 아니거니와 꼭 지켜야만 할 명분이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지난 1년간 우리는 IMF구제금융의 질곡속에서 교육 행정 금융 기업 사업 등을 비롯한 거의 모든 분야에서 고통을 분담하며 개혁을 서둘러 왔다. 예외가 있다면 정치개혁이 바로 그것이다. IMF환란의 주범과 주책임이 경제권에 있지 아니하고 도리어 정치권에 있다고 보기 때문에 개혁과 구조조정은 마땅히 정치권에서부터 심도있게 시작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 국익증진에 헌신하길 ▼

그러나 여야의 두 영수가 서로 요구하고 약속하고 있는 바는 그 길을 미리 막아버리는 것과 다름없게 되어버렸다. 누구의 이익을 위한 것인가. 정치개혁이 진행되면 정계개편은 필지의 것이 된다. 피할 수도 없거니와 피해서도 안된다. 오히려 만시지탄을 금할 수 없다.

필자는 11년전 동아일보 지면을 통해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의 도입과 한국정당의 체질개혁을 주장한 바 있다. 그렇게 하지 않고는 한국정치를 선진화시킬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한국정치의 개혁과 관련된 사항은 여야수뇌의 의무이지 흥정거리가 아니다.

원컨대 여야수뇌는 역지사지(易地思之),곧 서로 처지를 바꿔 생각하는 지혜와 아량을 발휘함으로써 서로 힘을 합쳐 오로지 국가이익 증진에 헌신해주기 바란다.

윤형섭<전 건국대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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