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임연철/「바가지 휴대전화」

  • 입력 1999년 2월 11일 19시 26분


박같이 큰 알에서 태어났다는 신라 시조 박혁거세의 탄생설화에서도 알 수 있듯이 박은 우리 민족과 오랜 세월을 함께 해온 식물이다. 그 때문에 박과 얽힌 민속이나 무속도 많다. 무당이 잡귀를 물리치기 위해 바가지를 두드려 소리를 내거나 교도소 출소자에게 바가지를 깨도록 해 귀신을 도망가게 하는 행위도 바가지에서 나는 요란한 소리를 응용한 우리의 민속이다.

▽바가지는 오랫동안 우리의 생활용기였던 탓에 플라스틱으로 대체된 오늘날에도 ‘바가지긁는다’거나 ‘바가지씌운다’와 같은 속어(俗語)가 자주 사용될 정도로 언어생활에 여전히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바가지긁는 소리도 듣기 싫지만 바가지쓰는 것을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통화를 못해도 안내음이 나오기만 하면 요금을 물리는 ‘바가지 휴대전화’에 대한 소비자들의 원성이 자자하다.

▽휴대전화 업체들은 음성 메시지 서비스(VSM)가입자에게 걸 때만 안내음이 나오고 요금이 부과된다고 한다. 그러나 1천4백만명의 휴대전화 소지자 중 거의 90%가 VSM에 가입한 상황이고 보면 통화는 안 이뤄져도 안내음만 듣고 요금을 무는 황당한 경우가 얼마나 많을지 상상이 가고도 남는다. 이같은 전화요금 수입이 연간 수백억원에 달한다니 말 그대로 바가지쓰는 기분이다.

▽하루 빨리 이용약관을 고쳐 전화를 건 소비자가 음성메시지나 호출번호를 남길 때만 요금이 부과되도록 해야 한다. 안내음만 듣고 끊었을 때는 요금이 부과되지 않도록 소비자의 선택권을 보장해줘야 한다. 휴대전화가 필수품이 되다시피 한 상황에서 사리에 맞지 않는 요금징수로 말썽을 빚어서는 곤란하다. 당국은 소비자가 또 다른 바가지를 쓰는 일이 없도록 약관을 철저히 조사하기 바란다.

〈임연철 논설위원〉ynchlim@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