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오래된 정원 (40)

  • 입력 1999년 2월 13일 17시 09분


나는 방으로 돌아와 이제 죽음의 눈으로 허씨와 최군의 일상을 지켜 볼 수밖에 없었다. 저녁 먹고나서 통방 시간에 최군은 내게 사주를 물었다. 그는 책에서 보았다는 자신의 사주 풀이를 말했다. 그는 수십년 후의 말년 운수를 말했고 나는 이제 몇 시간 남지않은 그의 목숨에 대하여 생각했다. 그 기억은 오랫동안 가슴에 남았다. 바로 그날 새벽 기상 시간이 되자마자 허씨가 목탁을 두드리며 아침 예불을 드리기 시작했다. 나도 일어나 서성이며 지장보살을 중얼거렸다. 내가 먼저 아침 운동 시간을 가졌고 그들은 점심 시간 직전에 운동을 했다.

교도관들을 통해서 분위기가 전달이 되었는지 아니면 사람이 가진 예지 때문인지 최고수들은 물론 일반수들도 뭔가 알 수 없는 불안감에 짓눌려 온 사동 전체가 고요하게 가라앉았다. 나는 내 방에서 정좌하고 기다렸다. 밥 많이 먹어라, 식사 야마 야마로 많이 해요. 사동이 떠들썩하게 서로 인사 나누는 소리도 그날은 없었다. 먹고 죽은 귀신 때깔도 곱다더니 밥 먹여 데려간다고 점심 식사가 끝나자마자 빨간 모자들이 들이닥쳤다. 모두 쥐죽은 듯 조용했다. 먼저 허씨가 끌려 나오는지 투덜대는 소리가 들렸다. 보기 숭허게 잔뜩 멕여서 매달 건 뭐야, 이럴 줄 알았으면 쥬스만 먹잖아. 그리고 그는 내 방 앞 시찰구 앞에 섰다. 오형 나 먼저 가우. 먼 훗날에 만납시다. 그가 지나가고 이어서 최군이 시찰구 앞에 조용히 선다. 이, 이거…가지세요. 울 어머니한테 편지나 한 장 써주세요. 그가 내민 건 보리수 열매로 만든 염주였다. 나는 허씨와 최군을 마치 혈육처럼 잊지 못했다. 일찍이 무기수의 시간을 터득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집행을 알게 되었던 그 하루가 여기서 평생을 보낼 무기수인 나의 일상이 될 터였다.

윤희 보세요

이제 내일 모레면 이감을 갈 거요. 거기에 가면 내가 무기수이니 아마 다른 데로 움직이지 못하고 말뚝 박고 살게 될 거라고 합니다. 속상해 하지 마시오, 좀 짓궂게 말하자면 거기에 있는 내 독방이 나의 관이 되는 셈이오. 면회와 편지도 직계가족 외에는 안되고 책도 제한을 심하게 받게 되오. 우리의 조직 사건이 처음부터 무리라는 건 변호사들도 말했으나 정치적 희생자로서 우리들의 사건이 유용하다는 것입니다. 검열 때문에 더 이상 뭐라고 쓰지 못하겠소.

여기선 여인이 갈 길을 다시 찾는 것을 고무신 거꾸로 신는다고 하오. 어느 전과 많은 절도범이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을 숙이고 찌그러져서 들어오니까, 모두들 그럽디다. 마누라가 고무신 거꾸로 신었다고.

나를 욕하지 말아 줘요. 내가 시간 여유가 너무 많아 그러니, 제발 윤희도 고무신을 고쳐 신기를 바라오.

지금 와서 생각하면 갈뫼에서의 우리 생활을 단 몇 달이라도 연장했더라면 하는 안타까움도 있어요. 아니 단 몇 주일이라도. 오늘 단 하루만이라도.

내가 보냈던 몇 장의 엽서가 있었으며, 크기는 비슷하지만 지질과 제책의 모양이 서로 다른 노트가 한 스무권쯤 쌓여 있었다. 노트에는 나중에 붙였는지 번호가 쓰인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나는 첫 번째 노트를 들쳤다.

<글: 황석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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