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투명성 높이는 주총으로

  • 입력 1999년 2월 17일 19시 42분


연말결산 상장법인들의 정기주총(株總)이 지난 12일 한미은행을 시작으로 다음달까지 잇따라 열린다. 원래 결산주총은 당해 법인의 전년도 경영성과를 평가하는 자리지만 올 주총은 국제통화기금(IMF)관리체제 1년을 넘긴 시점에서 처음 개최돼 과거 어느 때 보다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번에 주총을 갖는 5백30여 상장사 대부분이 경제위기 여파로 영업실적이 극히 부진해 무배당 또는 저율배당을 실시할 방침인데다 그동안 경영지배구조 및 사업구조조정 등에 대한 반발도 만만치 않아 적지 않은 파란이 예상된다. 뿐만 아니라 상법과 증권거래법 등의 개정으로 소액주주들의 권한이 크게 강화되었고 고객이 맡긴 신탁재산에 대한 기관투자가들의 의결권 행사도 허용되었다. 외국인 투자가들의 지분도 크게 높아졌다. 당연한 결과로 올 주총에서는 기업지배구조, 경영진의 부실경영 책임 등이 민감한 사안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기업들의 경영권 방어와 관련해서도 새로운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

그중에서도 태풍의 눈은 시민단체들이 주도하는 소액주주운동이다. 작년부터 소액주주들의 권익보호를 주장해 온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들은 이번 주총에서 대기업의 부당경영 실태를 밝히고 투명경영을 촉구하며 부실경영책임을 강력히 묻겠다는 방침이다. 이를 위해 기관 및 외국인투자가와의 연계도 추진 중이다. 물론 소액주주나 외국인 투자가의 권익은 보장되어야 한다. 그것이 지금까지의 잘못된 기업경영 풍토를 개선하고 지배주주의 경영독단과 전횡을 막아 경영의 투명성을 높이는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견제장치로서 작용할 수 있다면 더 말할 나위도 없다.

그렇지만 그같은 권리행사는 법과 제도의 테두리 안에서 합법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런 점에서 시민단체들의 소액주주운동이 어떤 기조위에서,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지가 주목된다. 이번 주총을 경제민주화를 이루는 전기로 만들겠다는 시민단체들의 다짐이 옳다 해도 소액주주운동이 경제논리를 뛰어넘어 사회운동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소액주주운동을 통해 기업의 분식결산이나 계열사 부당지원, 내부거래 등의 시정을 요구해 기업의 투명성을 높여가는 것은 전체 주주는 물론 기업경쟁력 제고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특정 지배주주에 대한 무한책임, 경영진의 투자실패에 대한 법적 책임추궁 등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 위법 또는 탈법행위가 아닌 경우 책임추궁에는 한계가 있고 또 지나친 경영간섭은 기업의욕을 떨어뜨릴 수 있다. 소액주주운동은 기업활력과 창의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내에서 견제와 균형의 새로운 관행을 만들어 가는 방향으로 전개되어야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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