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한밤중 도심 「도깨비불」

  • 입력 1999년 2월 17일 19시 42분


설날인 16일 저녁 서울 중구 중림동 일대에서 3건의 연쇄화재가 일어났다. 모두 비슷한 시간에 반경 6백m내에서 발생한 점으로 미루어 방화로 추정되는 불이다. 서울 도심에서는 이번 말고도 6일과 8일 밤에 각각 12건씩 연쇄방화로 추정되는 불이 났으나 경찰은 아직 범인의 윤곽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그로부터 열흘이 채 지나지 않아 발생한 이번 사건이 자칫 심각한 모방범죄로 번질까 두렵다.

마침 명절을 맞아 가족과 단란한 시간을 보내던 인근 주민들은 불에 놀라 집밖으로 긴급 대피했다. 화재에 따른 재산피해도 적지 않았으며 수십대의 소방차가 한꺼번에 출동하는 바람에 주변 교통이 크게 막히기도 했다. 이날 소동은 정체불명의 화재사건이 시민들을 얼마나 불안과 공포속으로 몰아넣는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이런 ‘도깨비불’이 계속되는 한 다른 지역도 안심할 수 없다. 언제 어느 곳에서 소동이 일어날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시민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서는 경찰이 방화 예방에 총력을 기울이면서 범인 색출에 나서는 수밖에 없다. 경찰이 넓은 도심지역을 일일이 뒤져가며 방화사건을 막아 내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과거의 경험에 비춰 사건을 방치한다면 모방사건이 꼬리를 물 가능성이 크다. 특히 전국적으로 한달 사이에 2백여건의 연쇄방화사건이 발생했던 90년 2월의 사례를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방화는 집단인명피해까지 야기할 수 있는 중대한 범죄다. 이런 반(反)사회적인 범죄의 범인들은 반드시 잡힌다는 인식을 심어주어야 제2, 제3의 불상사를 막을 수 있다.

그러잖아도 IMF체제 이후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증오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사기범죄도 크게 늘고 있다. 누구라도 피해자가 될 수 있는 상황이다. 이번 서울지역의 ‘도깨비불’이 경찰의 추정대로 연쇄방화라면 범행동기는 사회에 대한 불만 때문이거나 홧김에 불을 지른 것으로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지난 한해 이런 식으로 일어난 방화사건은 서울지역에서만 8백55건으로 하루 평균 2.3건에 이른다. 따라서 방화사건의 예방과 범인 색출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에 민생과 직결되는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경찰 당국과 함께 시민들도 방화에 대비하는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방화사건이 일어나더라도 시민 각자의 대응 자세에 따라 더 큰 불로 확대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최근 방화가 자주 일어나는 곳에 주민들이 비디오장치를 설치해 범인을 잡은 사례는 다른 지역에서도 충분히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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