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그 기본합의서는 북한의 파기선언으로 기능이 정지된 지 오래다. 지금으로서는 기본합의서를 가동시키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에 앞서 현정부는 대북(對北)정책에 대해 좀더 확고한 원칙을 갖고 그 원칙에 충실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현정부의 대북정책은 화해 교류 협력을 바탕으로 한 포용정책이 근간이지만 기본적으로 항상 민족의 운명과 장래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때문에 어떤 정권차원이나 정파적 필요에 따라 그 원칙이 흔들려서는 절대 안된다.
그럼에도 최근 정부자세를 보면 원칙준수보다 혹시 졸속에 치우치지 않나 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남북대화문제만 해도 그렇다. 정부는 평양당국이 당장 대화를 하기로 약속이나 한 것처럼 보랏빛 전망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북한이 주장하고 있는 우리와의 대화 전제조건은 변함없고 우방의 대북 시각도 바뀐 것이 아니다. 정부의 적극적인 대화유도 정책이 결실을 맺는다면 그보다 더 바람직한 일은 없겠으나 지금으로서는 주변 여건이 그렇게 장담할 단계는 아닌 것 같아 문제인 것이다.
대북 비료지원 문제만 해도 정부의 정책은 혼란스럽다. 상호주의 원칙을 완화해 북한에 먼저 비료지원을 하겠다는 것이지만 비료의 경우만 그런지, 아니면 상호주의 원칙을 사실상 전면 포기하려는 것인지 납득할 수 없다. 그런 상호주의 원칙이라면 지난해 4월 베이징(北京)남북당국자회담에서 구태여 그렇게 왈가왈부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대북 비료지원도 진작에 가능했던 일이다. 혹시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임기내에 북한과의 큰 대화를 성사시키기위해 비료를 선(先)지원하고, 또 그런 이유때문에 상호주의 원칙을 포기하는 것이라면 크게 잘못된 일이다.
대북관계에서 성과주의나 한건주의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것은 옳지 않다. 조급한 마음으로 충분한 준비없이 북한과 접촉해서는 낭패를 보기 쉽다. 북한에 역이용당할 수 있다. 신중하면서도 원칙에 충실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래야 남북관계도 더욱 안정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정부는 명심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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