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강미은/인터넷과 「정보제국주의」

  • 입력 1999년 2월 20일 20시 28분


90년대초만 해도 정보고속도로니 인터넷이니 하는 말이 매스 미디어에 그렇게 흔하게 등장하지 않았다.

지금은 어느 매체를 가릴 것 없이 인터넷에 상당한 시간과 지면을 할애한다. 불과 몇년 사이에 이루어진 놀라운 변화다.

▼웹사이트 차지한 영어

인터넷이 가져온 사회적 변화는 실로 엄청나다. 국경이 없는 초국가적 컴퓨터 통신망이 정보의 세계화를 실현하고 있다. 이전에는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만 손에 넣을 수 있었던 정보가 이제 마우스를 몇차례 클릭하는 것만으로 컴퓨터 화면에 뜨고 프린트돼 나온다.

물론 인터넷에 접속을 할 수 있는 물리적인 조건을 갖추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인터넷은 세계 각국의 외교정책 결정에도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세계 구석구석에서 일어나는 참사나 위기상황이 인터넷을 통해 실시간으로 알려지고 있다. 대처방안을 심사숙고하며 정책결정을 할 시간적 여유도 줄어들었다. 정부가 즉각적인 대응을 하지 않으면 정부나 정치지도자에 대해 우유부단하다는 여론이 형성될 가능성이 높다. 이에 따라 국제 문제에 대해서도 속전속결로 눈에 띄는 조치를 취해야 하는 상황에 자주 처하게 된다.

인터넷은 지역이나 국경을 초월한 존재여서 인터넷에서 쓰이는 언어도 정치적으로 중요할 수밖에 없다.

전세계에 존재하는 웹사이트 가운데 80%이상이 영어로 쓰여졌다는 통계가 나와 있다. 이 때문에 새로운 형태의 정보제국주의나 영어의 문화적 지배현상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최근 자료에 따르면 인터넷 인구는 미국 캐나다 등 북미지역 8천만명, 유럽 2천3백만명, 아시아 1천5백만명, 남미 2백만명, 아프리카 1백만명으로 추정되고 있다.

상대적으로 인구가 많은 동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등에서는 아직 인터넷 보급률이 낮은 실정이다. 초국가적 존재인 인터넷이 영어권 선진국의 점유물로 전락할 것을 염려하는 시각도 있다.

한국에서는 초등학생 때부터 경쟁적으로 영어 과외를 시킨다. 직장인들은 새벽잠을 줄여가며 영어학원을 다닌다. 별다른 자격증도 없는 미국사람이 영어를 모국어로 쓰고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영어과외를 해서 큰 돈을 쉽게 만지기도 한다.

인터넷 때문에 더 심한 영어 열풍이 불게 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할 만하다. 최근에는 영어를 공식언어로 쓰자는 주장까지 나와 찬반 양론이 팽팽하게 펼쳐진 바 있다.

인터넷이 생기기 훨씬 전부터 ‘정보제국주의’ 이론이 정립돼 있었다. 이 이론에 따르면 지구상의 국가는 ‘중심국’과 ‘주변국’으로 나누어진다.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미국이 중심국이고 멕시코 등 라틴 아메리카 나라는 주변국이다. 세계의 정보는 중심국인 선진국에서 주변국인 개발도상국으로 흐른다. 주변국은 다른 주변국에서 일어나는 일을 중심국의 눈(뉴스)을 통해 보게 된다.

이 이론은 인터넷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인터넷은 이론적으로는 쌍방향의 민주적 매체이지만 실제 세계 규모의 정보 이동은 중심국에서 주변국의 방향으로 일어난다. 매스 미디어의 내용은 매체의 종류나 형식에 많이 좌우된다. ‘기술적 결정론’이라고 비판을 받고는 있지만 맥루한의 말처럼 ‘매체는 곧 메시지’이다.

CNN의 눈을 통해 미국이 개입한 전쟁을 오랫동안 지켜본 사람은 자연히 미국 편에 서게 된다. 영어로 쓰인 웹사이트를 통해 지속적으로 정보를 얻는다면 과연 그 정보가 영어권의 시각을 벗어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영어권 시각’의 정보

문화제국주의 또는 정보제국주의에 대해 논의가 활발한 이유는 문화나 언어 정보의 문제가 바로 정치 경제의 문제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문화와 경제는 별개의 존재가 아니다. 문화의 확산으로 일어나는 생활양식이나 소비형태의 변화는 곧 경제 문제일 수밖에 없다.

월드 와이드 웹이 신속하고 중요하고 확실한 정보통신수단으로 자리잡은 시대에 인터넷이 영어를 중심으로 일방적인 정보의 흐름을 낳는다면 심각한 정보제국주의가 출현할 수 있다.

강미은(미 클리블랜드주립대 교수·신문방송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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