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충식/영치금募金 해프닝

  • 입력 1999년 2월 20일 20시 28분


영어의 뇌물(bribe)은 원래 거지에게 주는 빵 한 조각의 의미였다. 허기나 때우라고 하는 동정의 표시였던 것이다. 요즘 우리가 말하는 떡값하고도 통하는 대목이 엿보인다. 빵과 떡이 먹을거리라는 점이 ‘먹어야만’ 사는 인간의 약점과도 닿아있다. 공직자를 매수하기 위해 빵을 떼어주고, 떡만드는 데나 쓰라는 증뢰(贈賂)수법이 어딘지 유사하다.

▽원시시대에는 소금 가축 혹은 곡물이 돈을 대신해 쓰였다. 당연히 뇌물도 그런 현물이었을 것이다. 돈을 뇌물로 바치기 시작한 것은 역시 화폐 사용이 본격화된 이후의 일이다. 화폐가 쓰이고 경제활동이 더욱 복잡다기해지면서 뇌물은 돈이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 물론 조품(粗品)이라는 이름의 물건이 오가는 수도 있지만.

▽현금으로 받은 뇌물 2천8백만원을 사무실 캐비닛속에 숨겨놓았다가 붙잡힌 식품의약품안전청 국장이 화제였다. 그는 청장이 뇌물혐의로 붙잡혀가는 날에도 거리낌없이 돈을 챙겼다해서 더 비난을 샀다. 이번에는 식약청 간부 직원들이 갇힌 청장을 위해 영치금을 모은 사실이 보도되었다. 간부20만원 과장급5만원 연구원3만원씩 해서 1천8백여만원이나 걷으려다 따가운 외부 눈치를 의식해 그만 두었다고 한다.

▽물론 식약청에서는 ‘설에도 감옥에서 고생하시는 청장’을 위한 성의였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런 해프닝에 실소를 금하지 못하게 된다. 그만큼 식약청 안과 바깥 세상의 감각 차이가 큰 것일까. 뇌물이 우리 시대에 비롯된 것도, 우리 시대에 끝나지 않을 문제라는 것도 인정한다. 하지만 식약청 ‘안’의 무딘 감각은 정말 한심스럽다.

김충식<논설위원〉sear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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