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는 세상]신예기사 목진석과 아버지 목이균씨

  • 입력 1999년 2월 21일 18시 42분


지고는 절대 못사는 아버지와 아들. 설령 부자간의 승부일지라도.

‘포스트 이창호’의 선두주자인 신예 프로기사 목진석(睦鎭석·19)4단과 동원증권 가락지점 고문인 아버지 목이균(睦怡均·49)씨의 경우다.

목4단은 95년 15세의 나이로 롯데배 한중 천원전에서 중국의 거장 녜웨이핑(섭衛平)9단을 꺾어 ‘우주에서 온 소년’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96년 신예기사상, 98년 다승왕 등 화려한 수상 기록을 자랑하는 그는 특유의 질긴 싸움바둑으로 더욱 유명하다.

그의 ‘기풍(棋風)’은 아버지의 ‘기질(氣質)’을 이어받았다.

아버지 목씨는 다섯살때 오른팔을 다쳐 한손을 제대로 쓰지 못한다. 하지만 유도 초단에 골프 핸디가 13이다. 테니스도 선수 뺨치는 수준이며 바둑은 아마 5단 실력.

“우리 부자는 한마디로 지고는 못사는 성격이죠. 일종의 ‘내림 병’이에요.”

목4단의 승부근성은 바둑계에 널리 알려져 있다. 연습생 시절 ‘반상위의 무법자’로 불릴 정도로 전투적인 바둑을 구사했다. 적진에 혈혈단신 뛰어들어 상대편 대마(大馬)를 거침없이 쓸어버리곤 했다. 스스로도 “돌따먹는 재미에 바둑을 시작했다”고 할 정도. 한번 물면 놓지 않는다는 뜻에서 동료들은 그를 ‘진돗개’라고 부른다.

아버지 목씨는 남들이 대부분 20점 만점을 받는 고교 입시 체력장에서 12점밖에 얻지 못했다. 한 손만으로는 턱걸이를 하기 어려웠기 때문.

자존심이 상한 목씨는 유도를 시작해 초단을 땄다. 한손으로 상대의 도복을 잡고 넘겼지만 누구도 쉽게 그 기운을 당해내기 어려웠다.

테니스는 목씨가 가장 자신있어 하는 종목. 왼손으로 공을 토스하고 다시 왼손으로 라켓을 매섭게 휘둘러 서브를 넣는다. 그의 강속구를 받아본 사람들은 한결같이 혀를 내두른다. 각종 테니스대회 우승경력만 40여차례. 골프는 왼손으로 치고 오른손은 받쳐주는 역할만 하기 때문에 ‘한손 타법’으로 핸디 13을 유지한다.

아들이 말하는 아버지.

“승부에서 지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씩씩거리는 기운이 역력히 드러나죠. 옆에 있는 사람이 민망할 정도예요.”

아버지가 말하는 아들.

“진석이는 바둑에서 지면 말이 없어지죠. 삭이는 것 같아요. 내가 겉으로 흥분하는 성격이라면 진석이는 속으로 칼을 가는 스타일입니다.”

두 사람은 대화 도중에도 승부근성을 감추지 않는다.

아버지. “내가 진석이에게 테니스나 탁구를 가르쳤는데 아직 나한테는 어림없다. 싸움을 해도 진석이 정도는 가볍게 물리칠 수 있다.”

아들. “아버지에게 처음 바둑을 배웠지만 지금은 아버지가 다섯점을 깔고 둬도 나를 못 이긴다.”

조금도 물러서지 않는 아버지. “지난해 돈은 내가 더 많이 벌었다”고 받는다. 하지만 작년 상금수입이 7천2백만원이었던 목4단이 아버지의 수입을 추월할 날은 얼마 남지 않았다.

목4단이 프로가 된 뒤 부자는 좀처럼 대국(對局)을 하지 않는다.

아버지는 “매일 계속되는 대국으로 피곤한 아들을 귀찮게 하고 싶지 않기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아들은 “아버지가 나랑 바둑을 안두는 거는요, 나랑 두면 지니까 그게 싫어서 그런 거예요”라고 ‘분석’한다.

이렇게 라이벌처럼 행동하는 아버지와 아들이지만 부자지간의 정만큼은 언제나 돈독하다. 한가로운 저녁시간. 부자는 함께 끝말잇기 놀이도 하고 소파에 앉아 서로 툭툭거리며 발로 걷어차는 장난도 한다.

50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패배를 용납하지 않는 아버지. 아버지는 자신을 꼭 빼닮은 아들이 언젠가는 세계 정상의 승부사로 우뚝 서기를 바라며 항상 애정어린 눈빛으로 아들을 격려한다.

〈이완배기자〉roryrery@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