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편지]『헌 교복 얻어입은 딸아 미안하구나』

  • 입력 1999년 2월 24일 18시 37분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생이 되는 맏딸 효정이에게 헌 교복을 얻어 입혀야겠다는 아내의 말을 듣고 가슴이 아팠다.

아들을 낳으라는 양가 부모님의 성화에 못이겨 딸 셋을 두고 힘들게 아들을 얻었다. 교사의 월급으로 4남매를 키우는 일이 힘에 부친다. 자식에게 좋은 옷, 맛있는 음식을 해주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겠지만 못해주는 입장에서는 늘 미안하다.

효정이도 철이 들어 집안 사정을 아는지 새 교복을 포기한 것 같다. 부모에게 투정 부리고 떼를 쓸 만도 할텐데…. 이해심이 많은 아이다. 유치원도 학비가 적게 드는 초등학교 병설유치원에 보냈다. 학원에 보내지 않는데도 공부를 잘하니 다행이다. 효정이 아래 동생들도 착하고 구김살 없이 자라 대견하고 고마울 뿐이다.

아이들에게 “부모님이 실직해 어렵게 공부하는 학생도 많다. 비록 넉넉지 않지만 너희는 그보다 낫지 않으냐”고 말하면 모두 고개를 끄덕인다.

요즘 효정이는 방학 동안 집안에서 한창 말썽을 부리는 막내 동생을 잘 데리고 놀아준다. 효정이가 제일 좋아하는 통닭 한마리를 사줘야겠다.

효정아. 아빠도 크면서 큰아버지의 옷을 물려받아 입고 기운 양말을 신으며 자랐단다. 너무 섭섭하게 생각하지 말아라. 네가 어떤 마음자세를 가지고 사느냐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중학교는 초등학교와 많은 차이가 있다. 새로운 환경에 지혜롭게 적응하도록 노력하길 바란다. 초등학교 졸업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알찬 중학생활이 되길 기대한다.

안갑수<경남 창녕 남곡중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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