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임연철/『장보고 욕되게 할라…』

  • 입력 1999년 2월 24일 19시 27분


중국 산둥(山東)반도는 황해를 사이에 두고 한반도와 가장 가까운 곳이다. 산둥반도에서도 끝자락에 있는 조그만 항구도시 스다오전(石島鎭)은 한반도와의 거리가 특히 가깝다. 현지인들은 과장이 심하기는 하지만 새벽녘 인천의 닭울음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농담을 할 정도다. 스다오전의 항구가 내려다 보이는 적산(赤山)에 오르면 유명한 신라사찰 법화원(法華院)유적지가 나온다.

▽엉뚱한 중국 절이 들어서 있어 해상왕 장보고(張保皐)가 건립한 원래의 법화원 모습은 찾을 길이 없다. 그러나 일본 승려 에닌(圓仁)이 ‘입당구법순례행기(入唐求法巡禮行記)’에서 밝혔듯이 강회 참석 인원이 2백명에 달하는 대형 사찰이었다고 한다. 대형사찰을 유지할 수 있었던 장보고의 경제력과 당시 스다오전에 있던 신라방(新羅坊)의 규모가 얼마나 컸을지 쉽게 짐작이 간다.

▽신라방이 건설될 만큼 당나라와의 교역을 많이 하고 신라 일본을 잇는 국제무역의 주도권을 잡은 장보고의 행적은 오늘의 한국인에게도 많은 교훈을 준다. 3면이 바다로 둘러 싸인 한반도의 현실에서 해양진출의 중요성은 새삼스레 강조할 필요도 없다. 현대인이 즐기는 뮤지컬의 형태로 ‘장보고의 꿈’이 제작된 것도 장보고의 웅지를 전하려는 의도로 좋게 보인다.

▽그러나 해양수산부가 산하단체와 관련업계에 이 뮤지컬의 관람권을 구입토록 사실상 강요한 조치는 장보고의 웅지를 졸렬하게 보이도록 하는 처사로 유감이 아닐 수 없다. 문화는 자발적으로 참여해야 즐겁고 보람도 느낀다. 강매된 관람권을 들고 동원된 청중이 극장을 채운들 무슨 문화적 의미가 있을지 의문이다. 대형 리셉션 비용까지 산하단체가 부담토록 한 계획 역시 긴축분위기를 거스르는 엉뚱한 조치로 어이없다는 생각마저 든다.

〈임연철 논설위원〉ynchlim@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