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태기/노사정委에 들어가 싸워라

  • 입력 1999년 2월 25일 19시 24분


한국 경제의 앞날을 낙관적으로 전망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보다 객관적인 시각을 가진 외국인 투자자들 사이에서 조심스럽지만 한국 경제가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를 조기에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보는 견해가 확산되고 있다. 1년전만 하더라도 한국 사회를 무겁게 짓눌렀던 비관론이 낙관론으로 바뀌고 있는 것은 대단히 고무적이다.

▼경제회복 걸림돌 우려

이러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노동문제가 한국 경제의 회복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될 가능성은 여전히 높다. 특히 최근 노동계가 노사정위원회의 위상, 합의사항 이행, 구조조정문제 등을 이유로 노사정위를 탈퇴하면서 이러한 우려가 더욱 커지고 있다. 정부는 노동계를 달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이 상태로 간다면 금년도 노사관계는 심한 진통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노동문제를 해결하고 국난 극복의 횃불을 계속 밝히기 위해서 노사정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러한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지난 10여년간의 노사관계 경험을 먼저 되돌아보자. 정부는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노동문제의 해결이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노동문제가 터질 때만 반짝 관심을 기울였다. 평소에는 당위론적 입장을 내세우다가 일단 문제가 터지면 단기적인 미봉책을 찾는 데 급급했다.

지금까지 정부는 한국 경제문제의 본질과 노동문제가 차지하는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통찰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이래서 경제환경은 급변하는데도 불구하고 노사관계는 별로 바뀌지 않는다.

노사정위만 해도 그렇다. 노사정위는 한국의 정치 행정체제에 비추어볼 때 대단히 혁신적인 시도다. 어쩌면 한국이 지향해야 할 미래의 정치와 행정모델의 시금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의욕만 앞세우고 기획력과 정책 집행력이 뒷받침되지 못했다. 그 결과 노사정위는 한국이 안고 있는 노동문제의 본질을 개혁해나가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임시방편적인 것인지 그 역할이 불분명해졌다.

노동계도 스스로를 거울에 비춰보고 엄정한 자가 비판을 해야 한다. 노동계가 정책보다는 투쟁에 의존하고 책임보다는 권한만 앞세울 때 국민의 신뢰를 받기 어렵다. 노사정위는 노동계가 줄기차게 요구해온 정책참여를 실현시킬 수 있는 통로이자 노동자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서 활용해야 할 장이다. 그러나 합의사항의 이행이 지연되거나 합의사항을 이행하기 고통스럽다고 노동계가 노사정위를 먼저 박차고 나가는 것은 스스로 자기발목을 잡아 앞으로 노동계의 정책참여를 어렵게 만들 것이다.

경제회생의 조짐에도 불구하고 국민 대다수인 노동자의 생활은 어려워지고 있다. 실업과 빈곤의 확산, 소득의 양극화 문제 등 IMF 관리체제 이후 새롭게 나타나는 노동시장의 불길한 변화를 노동계는 직시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경제적 약자를 대변하는 노동계의 존립기반마저 허무는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노동계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노동계는 왜 이러한 문제가 발생하는지 그 이유를 먼저 냉철하게 생각해봐야 한다. 그리고 해결책을 찾기 위해 참여하는 자세, 그 참여속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자세로 나서야 한다.

정부 또한 경제환경의 변화에 따른 노동시장의 원리변화를 국민과 노동자들에게 제대로 알리고 예상되는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논의의 장을 만들어야 한다.

▼참여해 해결책 찾아야

실업과 빈곤의 확산은 경제환경 변화에 대한 사회와 개인의 적응력과 함수관계에 있다. 국민과 노동자들이 이 점을 이해하고 의식을 바꾸어 나가야 한다.

정부는 노동계 지도자를 설득해 협력을 구하기에 앞서 전체 노동자들의 이해를 구해야 한다. 고용안정이 유지된 채 구조조정이 가능하다는 식의 이중 메시지는 금물이다. 이러한 이중 메시지는 오히려 노동계 지도자의 입지만 위축시키고 현장 노동자의 반발을 자극해 노동문제의 해결을 오히려 어렵게 만들 수 있다.

노동자들의 강경한 투쟁이 다시 시작되고 노사정이 다시 대립하기 시작하면 어렵고 힘들게 쌓아놓은 국가신인도를 일거에 무너뜨려 해외 투자자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사태가 현실로 나타날 수 있다.

김태기(단국대교수·노동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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