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운동으로 의식개혁 되나?

  • 입력 1999년 2월 26일 19시 48분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26일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국제회의 연설에서 “개혁은 국민의식과 관행의 변화가 따라주어야 성공할 수 있다는 교훈을 지난 1년간에 얻었다”면서 “이같은 교훈을 받아들여 국민의식개혁을 지향하는 제2의 건국운동을 시작했다”고 국내외 인사들에게 설명했다. 또 “사회 모든 분야에서 새로운 의식개혁이 일어나야 한다”며 특히 부패 부조리 비능률 적당주의 집단이기주의 등을 척결한 도덕적 강국의 실현을 강조했다.

바람직한 시민의식의 함양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평균적 의식수준이 소득수준에 미달했던 점도 우리나라가 국민소득 1만달러시대 입구에서 추락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가운데 하나다. 부도(不渡)국가의 오명과 고통에서 완전히 벗어나 나라를 재구축하기 위해서는 많은 부분에서 국민의식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정부가 무브먼트(운동) 형태를 통해 국민의식 변화를 이끌어내겠다는 생각이라면 아무래도 시대착오적이요 전근대적인 발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말이 민관합동이지, 사실은 정권이 주도하는 대규모 조직에 의한 동원(動員)방식의 운동은 부작용이 더 클 소지를 안고 있다. 추진실무기구 책임자를 민간인으로 바꿀 수도 있다는 게 정부 생각이라지만 그렇게 한다고 해서 본질이 바뀌지는 않는다.

정치권과 정부의 속을 들여다보고 있는 국민의 눈에 관주도의 운동은 어떻게 비칠까. 정치권은 소아병적 편싸움, 상대 약점 찔러 내 잘못 덮기, 밥먹듯이 약속 뒤집기, 밀실정치 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부와 공공부문은 민간의 어느 구석보다도 심한 도덕적 해이에 빠져 국민부담 위에서 부실화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피땀어린 국민세금을 눈먼 돈처럼 갈라먹기에 급급하다는 인상마저 준다. 국민은 허구한 날 그런 걸 보고 듣는다. 그런 마당에 제2건국위가 ‘바르게 살자’는 슬로건 아래 저명인사 1만여명을 동원해 한마음다짐대회를 열고, 단상에 모셔진 명망가들이 비단같은 말을 한다고 해서 이에 감명받을 국민이 얼마나 되겠는가.

정치권과 정부가 먼저 변하지 않는 가운데 운동을 앞세우면 오히려 국민적 냉소와 불신을 키울 우려마저 있다. 정부가 국민의식개혁의 필요성을 절감한다면 바람직한 의식이 무엇인지, 정부 나름의 답안을 제시하고 그 잣대에 따라 솔선하는 모습을 보이면 된다. 그런 노력이 구체적으로 꾸준히 나타나면 운동이 따로 없어도 시민사회는 변할 것이다. 정권은 운동을 통해 국민의식을 인위적으로 개조할 수 있다는 미신에서 하루빨리 벗어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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