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에 비 오니?
내가 묻자 혜순은 손바닥으로 앞머리를 쓸어넘겼다.
땀이야. 아, 정말 혼났어.
무슨 일 있었어?
형, 나 짝 바꿔 줘.
덕화는 어디루 간 거야?
하이 골 때려. 내가 오늘 택시 값 얼마나 썼는지 알아?
너희 오늘 명동 맡았잖아.
오늘은 두 개 조가 나갔는데 다른 한 조는 신촌 로터리에서 일을 끝내고 이미 안전지대로 나갔다는 연락이 와 있었다.
하마터면 달릴 뻔 했어. 글쎄 학필이들 하구는 안하겠다니까….
혜순은 해고 노동자였다. 동우 계열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블랙 리스트 때문에 복직은 거의 불가능 했다. 그래서 선배들이 돈을 모아서 편직기 몇 대를 사주기로 했는데 그들 다섯 친구들 가운데 정자와 둘이 조직에 들었다. 우리는 두 사람을 각기 다른 조로 배치했고 가능하면 서로 부딪치지 않도록 배려했다. 혜순은 늘 그게 불만이었다.
혜순은 그 날 덕화와 보급품을 가지고 출발했다. 광주에서 항쟁이 벌어지고 있던 기간에는 서울 중심가의 검문이 심했기 때문에 가방이나 여행 백을 가지고 다니기가 점점 곤란해졌다. 혜순은 스스로 만든 전대 비슷한 자루를 헝겊으로 만들어 치마 안에다 둘렀다. 그 안에 유인물을 백 장 정도는 채울 수가 있었다. 덕화도 사파리 상의 안에 셔츠 단추를 열고 가슴에 유인물을 잔뜩 넣었다. 두 사람이 지명받은 장소는 명동 입구의 지하도였다. 그들은 수칙에 따라서 현장 답사를 했고 시각을 정했다. 퇴근 시간 뒤에 주위가 어두워지고나서 하기로 결정했다. 처음에는 두 사람이 각기 미도파쪽과 명동 입구쪽에서 지하도로 내려와 중간 교차 지점에서 엇갈리면서 뿌리고 뛰기로 했다.
그런데 덕화형이 그건 더 위험하다구 반대하는 거야. 나더러 택시를 잡아놓구 기다리면 자기 혼자 명동쪽 입구에서 뿌리고 택시를 함께 타고 뛰자구 했어. 내가 여자라구 맘이 놓이질 않는 눈치였어. 그러라구 했더니 아니나 달러, 무서워서 그랬던 거야.
혜순은 그가 작업하기 쉽게 쪼그리고 앉아 차고있던 유인물을 꺼내 주었다. 덕화는 가슴 속에 품었던 자기 것도 꺼내어 두 손에 움켜 쥐었다. 그네는 택시를 잡기보다도 먼저 덕화의 작업이 미덥지 않아서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뒤에서 지켜 보고 있었다. 덕화가 기웃하면서 지하도 계단 아래를 가늠해 보는 듯 하더니 갑자기 유인물 뭉치를 아래로 휙 던지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었다. 혜순이가 보았는데 유인물은 흩어지지도 않고 그대로 뭉친 채로 떨어져 버렸다. 그것도 중간 층계참에 떨어졌다. 누군가가 그대로 집어다 신고하기 딱 알맞게끔. 혜순은 저도 모르게 아래로 뛰어 내려가 유인물 뭉치를 다시 주워서 부채처럼 펼친 다음 두 번에 걸쳐서 뿌렸다.
<글:황석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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