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총풍고문」수사 어찌 됐나

  • 입력 1999년 3월 7일 20시 40분


판문점총격요청사건의 장석중(張錫重)씨 등 피고인 3명에 대한 국가정보원(옛 안기부) 고문의혹사건 수사가 5개월이 넘도록 감감무소식이다.

여권(與圈)이 이 사건의 ‘본질’로 규정한 이른바 총풍사건은 이미 작년 10월 기소돼 재판이 진행중인데 비해 피고인측이 제기한 고문의혹사건은 아직도 수사결론이 나오지 않았다.

변호인단이 지난 5일 기자회견을 갖고 검찰의 적극적 수사를 촉구한 것은 이해할 만하다. 검찰이 정치권이나 국정원의 눈치를 살피느라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떨쳐버릴 수 없다.

고문은 어떠한 흉악범이나 국사범(國事犯)에 대해서도 정당화될 수 없는 야만적 행위라는 것이 현대 민주국가의 법정신이다. 그런 점에서 국정원의 고문의혹은 진실여부 판단에 앞서 일단 중대한 사안이다. 더욱이 피고인들은 재판과정에서 상당히 구체적으로 구타와 잠안재우기 고문을 당했다고 진술해 왔다.

고문혐의가 있는 국정원 수사관들의 이름까지 지목했다. 검찰은 법절차에 따라 수사를 진행중이라고 말하고 있다. 공정하고 철저한 진상규명을 위해 시간이 더 필요하다면 이해하지 못할 것도 없다.

그러나 검찰이 처음부터 수사에 적극성과 성의를 보였다면 지금까지 결론을 못낼 이유가 없다고 본다. 아직 고문을 당했다는 피고인과 국정원 수사관의 대질조사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기본적으로 총풍사건과 고문의혹사건을 다루는 검찰의 인식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냐는 생각이다. 검찰발표대로라면 총풍사건은 국기(國基)를 흔드는 중차대한 사건이다.

그렇더라도 고문의혹을 그에 종속되는 작은 사건으로 치부한다면 곤란하다. 총풍사건이 만의 하나 고문에 의한 허위자백에 근거한 것으로 드러날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두 사건은 별개의 중요한 사건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고문여부를 밝혀내는 작업을 서둘렀어야 옳다.

고문 등 강압적 수사에 의한 진술이 법원에 의해 증거능력을 배척당한 사례는 수없이 많다. 이러한 형사소송 원칙이 총풍사건 피고인이라고 해서 예외가 될 수 없다.

재판부의 요청으로 그동안 국립과학수사연구소와 서울대병원이 피고인들에 대한 신체감정을 실시한 바 있으나 어느 쪽으로도 결정적 단서는 내놓지 못했다. 재판부의 판단과는 별도로 검찰은 수사결과를 빠른 시일내에 내놓을 책임이 있다.

수사기관의 가혹행위 악습을 청산하지 않고는 우리는 결코 선진국 대열에 들어설 수 없다. 검찰의 소극적 자세는 인권선진국을 지향하는 정부방침에도 어긋난다. 고문의혹은 조속히, 명백하게 규명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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