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에 집에 돌아와서는 신문을 보고나서 아까 산에서 만난 죽음이 객관 세계와 얼마나 동떨어진 나의 감상인가를 깨닫다. 종교재판의 낯설지 않은 기록을 적어 본다.
몸통에서 떨어져 나온 손발, 머리통에서 빠져 나온 눈알들, 다리에서 떨어져 나온 발목들, 관절에서 뒤틀린 힘줄, 몸통에서 뒤틀린 견갑골, 부풀린 동맥, 밀려진 정맥, 천장까지 끌어 올려졌다가 바닥으로 동댕이질쳐지고 빙글빙글 회전시키고 머리를 거꾸로 하여 공중에 매달리는 희생자들. 나는 고문자들이 피의자들을 채찍으로 후려치고 회초리로 두들기고, 손가락을 으스러뜨리고, 무거운 물건을 몸에 묶어 공중에 매달고, 굵은 밧줄로 꽁꽁 묶고, 유황으로 지지고, 뜨거운 기름을 온 몸에 뿌리고, 불로 그을리는 모양들을 보았다.
견딜 수 없는 고문을 받고 자백할 때 수사관은 그녀에게 말했다. 만약 지금까지 자백한 것들을 부인할 의사가 있으면 차라리 지금 나에게 말하라. 그러면 내가 너에게 유리하게 써 주겠다. 그러나 네가 만약 법정에서 사실을 부인한다면, 너는 다시 내 손아귀로 돌아와 이제까지 보다 더 가혹한 꼴을 당할거야. 나는 돌에서 눈물이 흐르도록 할 수도 있어.
세상에, 저건 중세 때였는데. 지금 여기서 어쩐지 많이 들어본 음산한 목소리가 아닌가. 나는 그이가 당한 사십 오일 동안의 지옥을 그 누님을 통해서 알고 있다. 아, 우리는 정말 운이 나빠. 산에서 만났던 풀꽃들에게조차 부끄러워 해야 하다니.
다시 그림으로 돌아가자. 세계에 정해진 인상은 없는 거야. 그림은 처음부터 붓을 든 자의 착각이야. 그이가 저 봄 비를 이름 지어진 것이라고 읊은 것처럼. 사회주의는 계급이 사물을 보는 시선을 결정한다고 말하겠지만. 다시는 경치를 예찬하지 말아야지. 그림은 보는 방식이야.
<글:황석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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