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4일 오전10시반 호주 시드니 북서부 체스우드가(街)에 있는 매리슨 로엘로프(86)의 집 현관. 조쌀한 생김새의 아네트 앤더슨(65)이 동갑내기 노엘라 휘셔와 함께 벨을 누르고 있었다.
앤더슨은 “귀가 잘 안 들리는 할아버지가 오늘도 늦게 나오시네”라고 혼잣말. 10번 이상 벨이 울리자 로엘로프가 느릿느릿 문을 열었다.
“좋은 아침이네요. 오늘은 따끈따끈한 생선요리를 준비했어요. 맛있게 드세요.”
동갑내기 두 할머니는 정부기관인 ‘윌로비 커뮤니티 에이드 도거티센터’ 소속 자원봉사원들. 앤더슨은 지난6년 동안 매달 넷째 수요일이면 어김없이 도거티센터에 나와 도시락을 만들어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에게 배달해 왔다. 3년 전부터 이웃인 휘셔도 합류.
“돌아가신 어머니도 음식을 배달받아 드셨어요.나도 보답해야죠.”
호주에는 3만5천여명의 자원봉사자가 매일 2만4천여명의 노인들에게 음식을 배달하고 있다. 자원봉사자는 50,60대이고 음식을 배달받는 노인은 대부분 75세 이상.
‘젊은 노인(Young Old)’이 ‘늙은 노인(Old Old)’을 돕는다.
호주 뿐 아니라 미국과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는 상대적으로 나이가 적은 ‘젊은 노인’이 70세 이상의 노인들을 돕는 봉사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다. 음식 배달과 간호가 많고 세금 서류를 대신 써주기도 한다. 이사갈 집을 대신 알아봐주거나 대리운전을 하기도 한다.
미국 인구통계국에 따르면 97년 현재 65세 이상은 3천4백여만명. 이 중 75세 이상은 47.1%인 1천6백만명에 이른다.
미국에선 호주와 달리 ‘젊은 노인’이 주로 시민단체를 통해 ‘늙은 노인’을 돕고 있다.‘젊은 노인’은 △노인 및 은퇴자협회(AARP) △은퇴전문가봉사단(SCORE) 등 전국 규모의 42개 시민단체와 지역봉사단체 및 교회 등을 통해 활동하고 있다.
AARP에 따르면 미국 노인의 41% 정도가 자원봉사활동을 하며 이 중 절반 이상이 ‘늙은 노인’을 돕고 있다는 것.
AARP에서는 ‘젊은 노인’이 자신의 장점을 살려 더 나이든 노인을 돕도록 하기 위해 ‘자원봉사 구인 은행’을 운영하기도 한다.
지난달 10일 오전10시경 미국 워싱턴 북동지역 프로비던스병원 지하의 캐서린홀.
전국 규모의 봉사단체 ‘밀스 온 휠스(Meals On Wheels)’의 워싱턴지회 소속 회원인 ‘젊은 할머니’ 3명이 더 늙은 노인들에게 배달할 도시락을 부지런히 만들고 있었다. 이들은 방금 이곳에서 만든 샌드위치와 병원 1층 식당에서 준비한 따뜻한 요리 및 과일 등을 도시락에 담았다. 이 도시락들은 거동이 불편한 노인 26명에게 배달된다.
밀스 온 휠스 전국 8백50여개 지부 소속 젊은 노인 회원 50여만명은 늙은 노인 1백여만명에게 음식을 매일 배달한다.
이 단체의 이닛 버든이사(48)는 “시민과 기업들은 ‘젊은 노인’의 봉사활동을 간접적으로 지원하고 있다”고 설명. 주방용 랩을 만드는 레이놀드 랩사(社)는 자사 제품에 ‘자원봉사자를 돕자’는 글과 밀스 온 휠스 전화번호 등을 싣고 있다. 우리나라의 700번 전화처럼 일반시민이 이것을 보고 밀스 온 휠스로 전화를 걸면 5달러(약 6천원)가 자동으로 지원된다.
〈워싱턴〓이성주기자·시드니〓이나연기자〉stein3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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