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오래된 정원(62)

  • 입력 1999년 3월 12일 18시 33분


향불도 수십개 피우고 하루종일 목탁을 치며 천도재를 해주었대. 스님이 그래, 그날로부터 마음이 편해지더라구. 그런데 이번에는 내가 으시시해서 그쪽 방에서 잠을 잘 수가 있어야지. 가만보니까 일자로 지어진 그 손님채 자리가 암만 생각해두 바로 주저항선 자리야. 거기다 참호를 팠었겠지. 왜그러냐 하면 방에서 앞 방문과 뒤의 방문을 열면 앞으로는 강쪽이 내려다 보이고 뒤로는 큰 산으로 연결된 능선이 보이는 거야. 맞바람이 너무 시원해서 늘 앞 뒤를 내다보며 살았거든. 내가 앉은 자리에서 수많은 젊음들이 으깨지고 썩어간 거야. 나는 밤이 되자 불을 끈채로 일어나 앉았어. 그리고 참선하듯 등을 펴고 눈을 감고 그들 모두를 생각했어. 다시는 이런 참혹한 세상이 되지 않도록 노력하며 살아갈 작정입니다. 부디 한을 푸시고 나를 도와 주시오. 했더니 그담부터 마음이 편해지구 잠두 잘 오더라. 나는 한 달 동안이나 깁스를 하고 목발을 짚고 절룩이며 지냈어. 그 해 유월에 군청 주재로 호국사에서 현충일 행사가 벌어지는 것두 보았지. 하얗게 소복을 입은 유족 할머니들이 와서 충혼각에서 재를 올리더군. 이튿날에는 어김없이 만각 스님과 주인 보살댁하구 공양주 할머니 셋이서 밥을 그득히 지어 다른 편에 먹이는 두 번째의 재를 벌이더군. 그 해 가을에 절을 떠나는데 주인 보살 아주머니는 내가 절의 사연을 모르는줄 알구 한숨을 쉬며 걱정을 하는 거야. 그래두 오현우씨가 있을적엔 손님채에 사람이 있다 싶어서 덜 적적하고 든든했는데 인제 거길 비우면 썰렁해서 어찌 살겠냐구. 내가 오던 첫 날 다리가 부러질 때 아니나다를까 했다는 거야. 그 전에는 고시생두 두엇 들어오고 재수 학생두 몇이 있었는데 나쁜 꿈에 시달리던지 헛것을 보고 놀라곤 했대. 어떤 이는 손님채 끝방에서 자다가 헛것에 따귀를 얻어맞고 코피를 줄줄 흘리며 뛰쳐 나오기도 했다는군. 나는 그 절집을 생각할 때마다 두 쪽으로 잘라진 국토를 생각했어. 귀신들마저 패가 갈린.

나는 저 지상의 반대편에서 아버지 시대의 젊은이들이 그랬던 것처럼 싸우다 죽은 기록을 읽는다. 이 편지의 주인공은 유격 활동을 하다가 고립된채로 굶어 죽었다. 그의 마지막 편지는 도시의 수도원에 피신한 아내에게 일기 형식으로 쓴 글의 마지막이다. 그는 이 다음에는 글을 쓸 힘조차 남아있지 않게 된다.

내 사랑하는 당신. 힘이 없어서 오랫동안 글을 쓰지 못했소. 내 몸은 부서졌소. 그러나 내 정신은 온전하오. 나는 내 자신을 당신에게, 그런 다음에 다른 사람들에게 바치고 싶소. 내가 가진 모든 힘,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으로써 당신을 사랑하오. 왜냐하면 당신은 나의 삶, 나의 투쟁, 그리고 나의 꿈의 화신이기 때문이오. 내 생일이나 또는 당신의 생일, 아니면 우리가 크리스마스 때까지 함께 하기란 힘들 거요. 그러나 나는 함께 지낼 수 있으리라 믿고 싶소.

<글: 황석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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