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일수/「빅4」도 인사청문회 해야

  • 입력 1999년 3월 15일 18시 58분


국민회의와 자민련 공동정권은 최근 국정협의회를 열어 당초 사전검증 차원에서 비공식 청문회를 거치기로 논의했던 검찰총장과 경찰청장을 그 대상에 넣지 않기로 결정했다. 검찰총장과 경찰청장은 헌법상 국회의 임명동의를 거치는 직책이 아니라는 이유다. 일단 임명된 뒤 비공식 청문회를 열자는 여권의 중재안 역시 원칙과 명분에 맞지 않다는 이유로 채택하지 않기로 했다고 한다.

▼檢-警총수등 왜 뺐나

인사청문회제도 도입은 시민운동단체가 꾸준히 요구한 이슈이다. 지난번 대전 법조비리 사건의 와중에서 검찰과 법원의 정치적 중립성 문제는 검사와 판사들 스스로의 입을 통해서도 그 심각성이 노출됐다. 권력기관이 국민으로부터 위임된 권한을 국민을 위해 사용하지 않고 통치자의 구미에 맞추어 자의적으로 행사한 사례는 일일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총풍과 북풍의 배후에 지금은 국정원으로 개명된 안기부의 장이 있었다. 세풍의 배후에는 국세청의 장이 있었다. 법원 검찰 경찰의 정치적 편향성도 대부분 기관의 총수들이 지닌 정치적 편향성을 반영한 것에 다름 아니었다.

지금 국정개혁의 구호는 요란하지만 실제 국민이 느끼는 개혁과 변화의 결실은 변변치 못한 게 사실이다. 특히 시민의 발길이 잘 닿지 않는 현장에서 개개인이 느끼는 왜소함과 무력감은 훨씬 더 심각하다. 권력이 국민을 위한, 국민의 것으로 탈바꿈하려면 무엇보다 시민들과 가까워져야 한다. 시민들이 현장에서 체감하는 목소리를 제대로 듣고 그 이유있는 아우성을 수용하려는 열린 마음의 자세가 있을 때 비로소 권력기관도 국민의 것으로 거듭날 수 있다.

국민의 정부, 국민의 사법부, 국민의 검찰, 국민의 경찰은 말로만 되는 일이 아니다. 권위주의 시대의 유산을 청산하기 위한 장기적인 반성과 민주발전을 위한 제도적인 개혁이 뒷받침돼야 한다. 장기적인 반성을 통해 권력기관의 의식과 작용방향이 바뀔 수 있다. 제도적인 개혁을 통해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지평을 열어갈 수 있다. 국민의 정부가 들어서 제2차 정부조직개편과 관련해서도 개방형 인사제도, 고객만족을 위한 행정의 서비스화 등 사고의 전환이라 할 수 있는 새로운 발상들을 내놓았다. 그러나 유독 사법 검찰 경찰 세무 등 권력기관의 서비스는 아직도 고객중심과는 거리가 먼 공급자의 시혜라는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국이 세계 문화시민사회의 일원으로 어깨를 나란히 하려면 권력기관의 음지 속에 기생하는 권위주의적 사고의 잔재부터 불식해야 한다. 거기에도 시민의 삶의 질에 중요한 일조권이 미쳐야 하고 시민참여의 폭이 증대돼야 한다. 그래서 수동적으로 재판을 받거나 조사를 받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함께 재판이나 조사를 형성해가는 제도로의 개혁이 필요하다.

▼‘국민에 충성’검증을

서구 사법의 민주화시대에 등장한 참심(參審)제도는 재판의 형성에 직업 법관과 나란히 시민의 동료인 사인판사(私人判事)가 참여하는 제도이다. 사인판사는 법률지식이 해박할 필요가 없다. 법률에 관해서는 비전문가이지만 사법을 권력기관의 독주에 맡기지 않고 시민의 편에서 함께 형성해간다는 역할만은 충실히 해 나갈 수 있는 자격을 부여받고 있다. 사인판사는 주민들의 손으로 직접 뽑은 일꾼이기 때문이다.

검찰총장과 경찰청장의 인사청문회제도는 이들 권력기관을 국민의 것으로 돌려주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개혁적 요구사항이다. 공식적이건 비공식적이건 이들의 능력 전력 가치관 직업윤리의식 미래에 대한 비전 등을 검증하는 제도적 장치를 통한다면 이들은 한 단계 더 국민의 눈과 귀를 의식하고 국민을 위해 충성스럽게 일할 것이다.

이같은 검증절차에 단순히 국회의원뿐만 아니라 관련기관의 재야단체, 시민운동단체들도 함께 참여하는 길이 열린다면 권력기관에 대한 총체적인 불신을 없애는 계기가 될 수 있으리라.

임명권자는 자신의 입맛에 연연해서는 안된다. 국민의 시대에 권력을 국민 속으로 녹아들게 하려면 국민의 입맛에 맞추고자 하는 철학과 개혁의지가 필요하다. 대전 법조비리사건 때 들끓던 민심을 잊지 말기 바란다.

김일수(고려대 특수법무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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