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인 장영순(張英順·44)씨, 결혼때부터 모신 장모(67), 딸 소연양(19·재수생), 아들 준창군(16·고2) 등 가족과의 오붓한 생활은 행복에 대한 새로운 의미까지 느끼게 해준다.
“공기 좋고 물 좋고 이웃들과 친하게 지낼 수 있으니 정말 남 부러울 것 없습니다.”
박씨 가족의 탈(脫)서울은 소연양의 음악공부와 박씨의 분재 수석에 대한 애착이 동기였다. 피아노를 전공하는 소연양이 분당계원예고에 진학해 서울에서 분당으로 집을 옮겼는데 아파트 이웃들이 피아노소리에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여 견딜 수가 없었다.
박씨가 86년부터 시작한 수석채집과 분재가꾸기도 아파트에서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틈틈이 채집한 수석 3백여점은 종이상자에 ‘갇힌 채’ 아파트 한 구석에 처박혀 있어야 했다. 온갖 정성을 들여 가꾼 분재 1백50여점도 아파트 옥상에서 베란다로, 베란다에서 옥상으로 수시로 옮겨지는 등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이제 떠날 때가 됐어.”
96년 말경 분당의 동호인 8명과 공동 구입한 준농림지에다 대지 1백68평에 건평 48평의 2층집을 지었다.
거실에 벽난로를 만들고 풍무 여물통 문짝 등 시골 벼룩시장에서 구입한 소품과 목각인형 동물박제 등으로 내부를 장식했다. 탁자받침은 괴목으로, TV받침은 여물통으로 하고 현관문에는 풍경도 달았다. 마당 한 쪽에는 분재하우스까지 만들었다.
“처음엔 도시를 떠나기가 두려웠는데 막상 와 보니 세상의 모든 행복이 우리집 울타리 안에 있는 듯 합니다.”
라일락 사철나무 단풍나무 등이 아직 겨울옷을 입고 서 있는 정원에서 매봉산을 올려다 보는 박씨의 표정은 그야말로 세상의 모든 것을 얻은 듯했다.
〈광주〓박종희기자〉parkhek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