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배인준/공동정권의 코스트

  • 입력 1999년 3월 16일 19시 16분


일본 정가의 94년 4월25일은 낮과 밤이 너무나 다른 하루였다. 비(非)자민당 연립정권의 6개 공동여당이 중의원에서 신생당당수 하타를 호소카와에 이은 연정 2대총리로 선출한 것은 그날 낮이었다. 하타총리 탄생에 표로서 가장 크게 기여한 것은 중의원 74석의 제1여당 사회당이었다. 그 사회당이 야당으로 돌아서는 드라마가 연출된 것은 그날 밤이었다.

▼당파간의 同床異夢

연정내 사회당을 제외한 5개당은 이날 저녁 단일 원내교섭단체를 결성해 국회에 등록해버렸다. 사회당당수 무라야마는 이날밤 이 사실을 뒤늦게 알고 하타내각 조각(組閣)을 위한 연립여당 당수회담장을 뛰쳐나갔다. 각료자리 6석을 분배받는데만 관심을 쏟고 있던 사회당 사람들은 허를 찔린 분노를 삭이지 못하고 연정탈퇴를 선언했다.

연정 막후실력자 오자와가 주도한 사회당 ‘왕따’작전은 강력한 신보수정권 구축을 겨냥한 정계개편극의 서막이었다. 또 2기연정 출범을 위한 정책협의 과정에서 사회당 모시기에 바빴던 오자와진영이 총리 선출과 동시에 사회당 다스리기를 시도한 흔적도 있다. 하지만 사회당 이탈로 소수여당이 된 하타연정은 59일만에 막을 내렸다.

일본 연정사(史)의 이 페이지에는 우리의 정치풍속과 흡사한 대목이 적지 않다. 그 속에는 당파간의 동상이몽(同床異夢), 협력과 배반의 교차, 우위와 열세의 반전 등 인간적이면서도 속물적이고 동물적인 정치군상(群像)들의 모습이 고루 투영돼 있다.

그후 일본 정치는 자민당 사회당의 보혁(保革)동거 등을 거쳐 지금은 자유당으로 신장개업한 오자와세력이 자민당과 재결합해 보보(保保)연정시대를 펼치고 있다. 일본의 연정실험은 93년 호소카와연정 등장 이후 우여곡절을 거듭하면서 이렇게 계속되고 있다. 그렇지만 연정이기 때문에 국정난맥상을 드러내지는 않는다. 연정 운영에 따른 국가적 국민적 코스트(부담)가 그다지 크지 않은 셈이다.

수시로 일어나는 정변의 충격을 관료조직을 비롯한 안정된 국가 사회 시스템이 무리없이 흡수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또 연정내 각당간의 정책협의 및 합의도출 시스템이 상당히 효율적으로 작동되기 때문일 것이다. 연정파트너가 여러번 바뀌었지만 그때마다 결정적 정책혼선을 예방할 수 있었던 것은 기본정책에 대해 합의를 이룬 뒤에야 연정을 출범시켰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우리 국민은 DJP(김대중대통령과 김종필국무총리) 공동정권의 국정혼란에 따른 코스트를 적지않게 지불하고 있다. 정책의 혼선과 일관성 결여에 따른 국정의 난맥상이 집중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이 가운데 상당부분은 공동여당내 정책협의 및 합의도출 시스템의 부재에 원인이 있다. 내각제 개헌을 둘러싼 ▼정책협의 시스템 不在

대통령과 총리간, 국민회의와 자민련간의 동상이몽이 혼선을 부채질한다. 국정운영 실태(失態)는 정권 담당자들에게도 큰 짐이 되겠지만 궁극적으로는 국민이 그 부담을 떠안게 된다.

대통령과 총리가 충분한 협의와 투명한 합의에 바탕을 두지 않고 정권운영에 대한 서로 다른 계산에 따라 힘을 주고받으면서 임기응변적으로 정책을 판단하면 국민은 국정의 뚜렷한 방향을 읽기 힘들다. 이에 따른 혼란도 국민적 사회적 코스트가 된다.

대통령은 대통령대로 ‘내각제 몽니’를 가끔 부리는 총리를 달래려고 마음고생을 하는 것 같다. 김모임보건복지부장관과 김선길해양수산부장관을 갈아치우는 대신에 느닷없이 ‘총리의 비위를 거스른’ 국민회의 김원길정책위의장과 설훈기조위원장을 문책경질한 것도 총리가 마음에 걸렸기 때문으로 보인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건 인사가 명쾌하지 못하면 책임정치 책임행정은 헛구호가 된다. 정치와 행정의 책임이 실종되면 결국은 국민이 그 피해자가 된다. 한일어업협상에서 한번 실패한 김선길장관과 실무협상대표를 재협상에 투입해 국민을 더욱 치욕스럽게 만든데는 이들을 즉각 교체하지 않은 DJP의 공동책임이 크다.

두 여당은 지금이라도 제대로 된 정책합의 시스템을 구축해 정책의 일관성과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명실상부한 공동정권이라 하기 어렵다. 당리당략에 따라 껴안기도 했다가 몽니도 부렸다가 한다면 공동정권의 이름으로 야합하다 실패한 정권으로 역사에 기록될지 모른다.

배인준<논설위원>inj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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