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파이어니어 9]서울대의대 중앙내과 방영주

  • 입력 1999년 3월 23일 18시 39분


중1 성적표에는 ‘하’라고만 적혀 있다. 40∼60등은 등수를 표시하지 않았기 때문. 고2 때 처음으로 반에서 2등. 서울대의대 수석졸업. 암정복의 ‘새 밀레니엄’을 향해 길고도 험한 길을 가고 있다. 서울대의대 종양내과 방영주(方英柱·45)교수. 한국인의 사망원인 1위로 한해 5만여명이 사망하는 암에 관한 논문 1백47편을 발표했다. 국내에서 개발되는 대부분의 항암제에 대해 과연 효과가 있는지, 있다면 어느 정도인지를 평가하는 서울대병원 임상연구센터의 항암제임상시험 담당자다. 정부의 ‘암정복 10개년 계획’ 추진기획단위원이기도. 서울대병원 박용현원장(일반외과)은 “암환자인 친지를 믿고 맡길 만한 후배”로 치켜세운다. 암전쟁=‘정보전달’ 전쟁모든 세포에는 암유전자가 있다. 발암물질이 들어오면 암유전자가 정상세포를 암세포로 바꿔놓는다. 이것이 암이다.

방교수의 전공은 위암. 그의 연구는 ‘TGFβ’와 직결돼 있다. TGFβ란 모든 세포에서 나오는 물질로 각 세포에 ‘계속 성장’ 또는 ‘성장중지’를 요구하는 정보가 담겨 있다. 정상세포와 면역세포는 ‘성장중지’정보를받아들여 불필요한 성장이나 증식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암세포는 ‘성장중지’ 정보를 받아들이지 못해 계속 자란다.

암세포는 왜 ‘TGFβ’를 못받아들일까? 이것이 방교수 연구의 핵심주제다. 그 원인을 규명해 치료방법을 개발하면 암세포가 정상으로 돌아올 수 있다. 바로 암치료를 의미한다. 김성진책임연구원과 함께 연구한다.

그는 동물실험 중이다. “쥐 등을 대상으로 위와 대장의 모든 세포가 TGFβ를 받아들이지 못하게 하면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가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이 상태가 암입니다.”

방교수는 이미 위암 분야에서 ‘세계최초’를 기록했다. 위암도 세포 자체의 결함 때문에 TGFβ의 정보를 받아들이지 못해 생긴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밝혀내 94년 미국학술원 학술지에 발표했다. 지금은 ‘결함’의 원인을 규명 중.

국내 종양내과학의 1세대격인 서울대의대 김노경교수는 방교수를 “91년 미국임상종양학회의 ‘젊은연구자상’을 탔을 정도로 인정받고 있다”면서 “위암환자는 우리나라와 일본에 특히 많아 그가 세계적 성과를 낼 것으로 기대한다”고 평가했다.냉정한 자기 평가76년 노벨상수상자인 마이클 비숍이 암유전자를 발견한 이후 암정복의 ‘여정’은 상당히 단축된 상태.

“암덩어리를 들어내도 암세포가 어딘가에 숨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언제 재발할 지 모릅니다. 암세포의 겉모습은 정상세포와 다르지만 대사과정은 거의 같습니다. 그래서 암세포만 ‘공격’하는 치료제 개발이 어렵습니다.”

미국의 한 발표에 따르면 새 항암물질이 세포실험 동물실험 등을 거쳐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인정받을 확률은 10만분의 1.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생명공학적’ 항암제를 개발하는 것이 그의 목표. 화학약품인 기존 항암제는 부작용이 많아 인체성분 또는 생명체에서 배양한 물질로 항암제를 만들겠다는 것. 그는 미래는 불투명하다고 말한다.

“89년 미국 국립암연구소 연구원 생활을 통해 ‘우리의 미래가 결코 밝지만은 않다’는 것을 절감했습니다. 특히 한국의 암 연구수준은 크게 떨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과학은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일인데 우리사회는 결과를 기다릴 여유를 주지 않습니다.”

선진국에선 대학병원의사가 연구와 진료에 투자하는 시간 비율이 7대3이지만 국내에선 1대9. 약물로 암을 치료하는 종양내과의는 국내에 겨우 1백여명. 방교수는 하루 평균 1백여명의 환자를 돌보고 매주 40∼50명의새환자를 맞이한다.덕분에오전8시에출근해밤10시전에집에도착하는 것이 ‘목표’.두뇌게임을 즐긴다책이건 영화건 추리물을 좋아한다. ‘펠리컨 브리프’를 쓴 존 그리샴이나 첩보소설 작가인 프레드릭 포사이스의 소설은 거의 다 읽었다. 특히 짧은 시간에 판단하고 승부하는 ‘도박’을 사랑한다. 중학시절 카드놀이는 거의 다 해봤고 마작도 ‘잠깐’ 했다. 당구는 4백. 가족과 테니스를 즐긴다.

방교수는 ‘직업병’이라며 연방 담배를 피워 물었다. 얼큰한 국물을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충고했다.

“담배와 매운 음식을 피하면 암 발생 확률이 3분의 1은 줄어듭니다.”

〈이나연기자〉larosa@donga.com

▼프로필

△54년 서울 출생

△2남3녀중 장남

△서울 장충초등학교 경기중 경기고 졸업

△79년 서울대의대 수석졸업

△82년 박민숙씨와 결혼, 1남1녀

△86년 서울대의대 내과 전임강사

△89∼91년 미국 국립암연구소 객원연구원

△서울대의대 내과 교수(현)

△암정복추진기획단 위원(현)

△국립암센터설립준비단 운영위원(현) △서울의대암연구소 운영위원(현)

△E메일〓bangyj@plaza.snu.ac.kr나의 한마디“똑똑한 것을 감출 줄 아는 것도 똑똑한 것만큼 중요하다.”(후배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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