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공약어긴「공보처」부활

  • 입력 1999년 3월 23일 18시 55분


공보처는 새 정부의 개혁기치 아래 지난해 문을 닫았던 정부조직이다. 문공부나 그 후신 공보처가 지난 시절 언론통제의 하수인 역할을 해왔다는 악명을 남겼기 때문에 공보처 폐지는 새 시대의 도래를 알리는 상징적인 조처이기도 했다. 공보처 폐지는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대선 공약 가운데 들어 있던 항목이기도 하다.

그런데 정부가 이번에 46억원이나 들여 제2차 정부조직 개편안을 만들어 내놓은 핵심 가운데 국정홍보처 신설이 들어 있다. 국무총리 산하 공보실을 없애고 문화관광부의 옛 공보처 기능 일부를 합쳐 국정홍보처를 만들 계획이라고 한다. 요컨대 일년여만에 정부가 스스로 없앴던 조직을 부활시킨다는 비난을 면치 못하게 됐다.

국정홍보처 부활의 배경으로 한일어업협상 실패, 국민연금확대 혼선 등이 정책 자체의 실패라기보다 홍보의 실패 때문이라고 보는 여권핵심부의 시각이 작용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는 그런 시각 자체에도 동의할 수 없지만 백보를 양보해 그런 논리를 내세운다 하더라도, 기존의 정부조직인 문화관광부 청와대공보수석실 국무총리공보실이 유기적으로 손발을 맞추면 얼마든지 홍보와 설득이 가능한 것 아니냐고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는 최근 청와대 정책기획수석을 교체 하면서 국정홍보기능을 맡길 것이라고 발표한 바도 있다. 말하자면 ‘작고 효율적인 정부’의 규모로도 그 시스템 하에서 얼마든지 정부입장을 설명하고 국민에게 알리는 국정홍보기능은 가능할 것이다. 그런데도 굳이 국정홍보처를 부활시키는 저의가 어디에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정부 당국은 국정홍보처가 생기더라도 과거의 문공부나 공보처가 비난 받았던 언론통제나 간섭은 전혀 없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조직의 메커니즘과 권력의 속성 때문에라도 그런 약속은 지켜지기 어렵다. 일단 조직을 만들어 놓으면, 조직은 일을 만드는 속성이 있고 그 구성원은 자리지키기와 ‘밥값’을 위해서도 무언가 일을 꾸미게 되어 있다.

따라서 그 종사자들이 언론에 유형 무형의 작용을 시도, 종국에는 언론간섭이나 통제로 흐르고 말 것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재야 언론단체가 국정홍보처 신설에 대해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시대역행적인 발상이라고 반발하고 있는 이유도 바로 그런데 있는 것을 정부는 알아야 한다. 과거 문공부나 공보처도 법적으로나 기능적으로 언론통제에 나설 근거가 있었던 것이 아니다. 언론 주무부처라는 이름으로 정권의 첨병이 되어 신문과 방송의 배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곤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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