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반병희/「改惡」 정부조직개편

  • 입력 1999년 3월 23일 18시 55분


『참담하다.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조직개편인가.』

2차 정부조직개편에 깊숙이 참여했던 한 대학교수는 이제 정부가 무슨 낯으로 근로자와 기업 그리고 국민에게 ‘고통분담’을 요구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미래 국가경영’에 대한 확고한 철학과 비전없이 극심한 부처이기주의와 정치논리로 정부조직개편 작업은 본질이 철저하게 굴절되고 왜곡됐다고 이 교수는 비판했다.

당초 민간경영진단팀이 내놨던 내용과 비교하면 기가 막힌다. ‘변화’에 역점을 둔 2,3안은 깡그리 묵살되고 ‘현행유지’가 득세했다. 공무원구조조정은 8천여명을 감축하는데 그쳤고 정원의 30%를 개방형으로 채용하겠다던 계획도 빈 자리만 메우는 형태로 변질됐다. 국정홍보처와 기획예산처 신설 등은 ‘작고 효율적인 정부 구현’이라는 취지를 공염불로 만들었다.

진념(陳稔)기획예산위원장은 23일 기자회견에서 “공기업 등 다른 부문의 구조조정은 분사(分社)와 민영화 등이 포함되기 때문에 수치가 높은 것이며 정부도 철도청을 민영화하면 감축규모가 30%를 넘는다”고 군색하게 설명했다.

뼈를 깎는 자기혁신은 고사하고 21세기를 맞아 정부가 갖춰야할 기능과 역할, 그리고 이에 걸맞은 시스템을 어떻게 유효적절하게 가동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찾아보기 어렵다.

부처통폐합만 해도 그렇다. 중이 제머리 못깎듯이 정부 스스로 할 수 없는 것을 민간의 힘을 빌려 하기 위해 경영진단이란 비싼 과정을 거치지 않았는가. 반발을 예상치 못했다면 아둔하고 그것을 알고도 후퇴했다면 그야말로 ‘도덕적 해이’의 전형이 아닐 수 없다. 극심한 행정공백을 방치한 대통령의 태도도 이해하기 힘들다. 결국 개편안의 변질사태 속에서 가장 타격을 입은 것은 다름아닌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지도력이 아닐까.

반병희 <경제부> bbhe424@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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