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김충식]참을수 없는 「인기」의 가벼움

  • 입력 1999년 3월 23일 19시 02분


선거를 앞두고 정부의 주요정책들이 표심(票心)을 의식해 흔들리는 징후들이 보인다. 심지어 표를 잃지 않기 위해 공무원들의 눈치를 살핀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다가온 재보선과 내년 총선을 앞둔 ‘국민의 정부’의 엉거주춤한 자세가 그래서 군사정권 때보다도 퇴보하지 않느냐는 힐난도 있다.

정권 담당측은 불쾌해 할 수도 있겠다. 자존심 상하게도 하필이면 군사정권과 감히 비교할 수 있느냐고 불평할지 모른다. 하지만 20년도 훨씬 지난 박정희(朴正熙)시대에도 선거 때가 되면 ‘서정쇄신(庶政刷新)’을 내걸고 공무원을 가혹하게 몰아붙였다. 또 욕먹어도 해야할 정책을 밀어붙였다.

▼ 票의식 주요정책 흔들 ▼

물론 당시 공무원 때리기의 동기나 겨냥하는 바는 정치적이었고,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었다.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표를 잘 몰아와야 한다는 ‘얼차려’요, 한편으로는 공무원한테 시달리는 유권자들을 위무함으로써 표를 우려내자는 속셈이었다.

하지만 신구 정권의 자세 차이를 두고 아이러니라는 말도 나오고 있다. 이제 그런 구시대를 청산하자는, 그래서 21세기를 여는 국가적 구조조정을 완수하자는 ‘민주화투쟁의 기수’ 김대중(金大中) 정부가 비칠거리는 징후가 보이는 것이다. 정책이 반대에 부닥치면 머뭇거리고, 정부조직개편에서도 공무원의 눈치를 본다.

참을 수 없는 ‘인기’의 가벼움에 휘말리는 인상인 것이다. 새삼스레 미국의 영원한 ‘인기대통령’ 존 케네디가 상원의원 시절에 쓴 책 ‘용기(勇氣)있는 정치인들’을 생각한다. 케네디는 미국 정치사에서 “옳다고 믿는 것을 위하여 당과 명성과 지위를 팽개친 용감한 정치인들” 8명의 초상과 그 행적을 적으면서 맨먼저 존 퀸시 애덤스를 소개하고 있다.

존 애덤스는 상원의원과 대통령을 지내면서 줄곧 소속정당과 명예 그리고 출신지역 주민을 ‘배신’해갔다. 이를테면 소속당과 아버지의 정적 제퍼슨의 편을 들어 루이지애나주 매입안을 지지해 당과 가족의 비난 따돌림도 감수했다. 그러면서 이 ‘배신자’는 동료의원들에게 말했다.‘어떠한 공적인 안건을 처리하는데 있어서도 정치적 배경에 묶이지 않아야 한다. 선출된 의원이 그의 의무를 수행함에 있어서는 유권자들의 의사에 구애되어서는 안된다. 직업적인 애국자가 되어서는 안된다’고 했다.

그는 스스로 정치 생명을 건 결단에 주저하지 않고 유권자들의 따돌림에 직면해서 일기에 적었다. “내가 믿는 정의에 따라 자유롭게 행동하지 못하는 한 내 직분은 유지할 필요가 없다. 나는 수난을 무릅쓰고 행한 과거의 행동에 대해 후회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수난의 경험을 다시 밟아보고 싶은 충동조차 느낀다.”

▼ 국익위해 인기 외면을 ▼

케네디는 궁극적으로 국익이 무엇이냐를 위해 거품같은 인기를 외면하고 스스로 정치적 순교자가 되기를 자처한 여덟명을 그런식으로 열정적으로 서술했다. 에드먼드 로스, 대니얼 웹스터, 샘 하우스턴, 로버트 태프트 등 현실정치의 패배를 통해 ‘보이지 않는 성공’을 택한 그들 8인의 고통스러운 행적을 추적하면서, 케네디는 정치인에게 인기가 무엇인가, 역사와 국민이 무엇인가를 생각했을 것이다.

물론 정치는 상대적이고 따라서 신축성과 탄력을 갖고 추진하지 않으면 안될 때도 있다. 예컨대 이 정부의 공무원에 대한 관용이, 김영삼(金泳三)정부의 닦달하고 후려치기만 하다가 실패한 경험을 반사하는 것일 수있다. 그런데도 정책추진에서, 정부조직개편에서, 국정쇄신 개각에서 머뭇거리고 좌고우면이 지나치다. 공동정권의 한계라는 배경설명도 있고 ‘소수정권’의 현실이라는 고백도 있기는 하다.

김대통령은 정상에 오르기 전, 야당총재 시절부터 공사석에서 “나는 힘든 운명을 타고난 것 같다”고 말하곤 했다. 그의 파란만장한 삶에 비추어 보면 솔직한 고백으로 들린다. 오늘의 현실도 그런 측면이 없지 않다고 하지만 그는 어쨌건 이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는 입장에 섰다. 이 엄혹한 선택의 시기에 거품같은 인기나 여론에 급급해선 되는 일이 없을 것이다. 국정운영에 대한 확고한 철학과 비전을 갖고 지향점을 향해 다가가는 용기가 필요하다. 벌써 정권 1년여가 지나갔고, ‘겨우’ 4년 안되는 세월이 남아 있을 뿐이다.

김충식 <논설위원> sear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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