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양건/司法개혁 핵심은 정치중립

  • 입력 1999년 3월 24일 19시 03분


사법개혁의 불씨가 다시 살아나는가. 대통령 직속으로 사법개혁위원회가 설치되리라는 소식이다. 전문성을 갖춘 중립적 인사로 위원회를 구성해 검찰인사 및 사법시험제도 등 사법 전반에 걸친 개혁안을 금년 8월말까지 마련한다는 것이다. 구체적인 개혁 방안들을 논의하기에 앞서 사법개혁이 지니는 의미를 다시금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개혁의 방향이 제대로 잡힐 것이기 때문이다.

▼人事제도 혁신 필요

사법권은 국가권력의 핵심은 아니다. 입법권 행정권에 비하면 주변적 권력이다. 그렇지만 국가개혁의 가장 기본적인 과제는 검찰을 포함한 넓은 의미의 사법 혁신에 있다고 필자는 믿고 있다. 한국 사회의 고질적 병폐는 법과 원칙에 앞서는 정실과 연고, 이로 인한 정경유착과 부정부패에 있다. 어떻게 하면 여기에서 벗어나 조금이라도 법의 지배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까. 그 열쇠는 법집행자인 검찰과 법원에 있다. 입법부 행정부 스스로에 의한 자정(自淨) 능력은 이미 기대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사법이 제 역할을 못하는 까닭은 두 가지 점에서 찾을 수 있다. 그 하나는 관행이라는 이름아래 지속돼온 금권적 비리이고 다른 하나는 정치적 중립성 확보의 실패다.

이 가운데 더 본질적인 것은 후자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검찰과 법원의 정치적 중립성은 어떻게 이룰 수 있는가. 법원에서는 지난 권위주의시대와는 달리 정치권력이 직접 재판에 개입하는 일은 거의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재판이 정치적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면 이것은 무엇 때문인가. 그 원인은 법관인사 제도에서 찾을 수 있다. 대법원장 선임은 정치권력에 의해 이루어진다. 이 단계에서 이미 정치적 고려가 개입될 수밖에 없다. 그 대법원장의 손에 법관인사권이 쥐어져 있다. 무엇보다도 승진과 보직에 민감한 법관들이 과연 대법원장의 정치적 성향으로부터 초연할 수 있을 것인가. 검찰의 사정은 더 나쁘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이 점은 이미 대전 법조비리사건에서 촉발된 검찰파동을 통해 드러난 대로다. 검찰 역시 법원과 마찬가지로 계급조직과 인사제도를 통해 정치적 중립성을 제한받고 있다. 어느 집단보다도 권위의식이 강한 검사들에게 승진 경쟁을 시켜놓고 그 인사권을 궁극적으로 대통령이 쥐고 있는 한 검찰의 정치 중립은 기대하기 힘들다. 뿐만 아니라 검사는 판사와 달리 ‘검사동일체의 원칙’에 따라 상명하복의 관계에 매여 있어서 그 정치적 독립은 제도적으로 더 어렵게 돼 있다.

▼정치권 의지에 달려

이처럼 사법개혁의 요체는 법원과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 확보에 있고 이를 위한 제도개혁의 핵심은 법원 검찰조직의 계급구조와 인사제도의 혁신에 있다. 사법개혁의 또 하나의 기본목표는 법률서비스의 전문화에 있다. 머지않아 법률서비스 시장이 개방되면 한국의 변호사들은 자칫 외국 법무회사의 심부름꾼으로 전락할지 모른다. 이에 대비한 방책으로 거론된 것이 흔히 로스쿨이라고 불리는 법학대학원 제도이다. 이 제도의 채택을 둘러싸고 아직도 논란이 계속되고 있지만 한가지 오해는 풀어야 한다.

법학대학원제도 도입론이 미국식 제도를 그대로 본뜨자는 것은 아니다. 이 학제개혁의 핵심은 대학의 학부에서 법학 이외의 전공을 거친 학생들에게 대학원 단계에서 전문적인 법교육을 시킨다는 점에 있다. 이렇게 하는 것이 법률서비스의 전문화를 위해 가장 바람직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예컨대 지적재산권법 전문가가 되려면 학부에서 공학을 전공하고 대학원 수준에서 법을 배우는 것이 이상적이다. 김영삼정부가 시도했던 사법개혁은 좋게 평가해도 절반의 성공을 넘지 못했다. 사법시험 합격자 수의 증원은 결코 적지 않은 성과지만 법학교육 개혁은 좌절됐고 대법원 자체에 의한 제도개선은 지엽적인 것에 그쳤다. 사법개혁의 두번째 시도가 과연 성공할 것인가. 그 관건은 정치권의 자기억제 의지, 그리고 법조 집단이기주의를 뛰어넘을 정치적 지혜와 용기에 달려 있다.

양건(한양대 법대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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