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까지만 해도 객장 한 구석에 있던 자동화코너가 객장 밖으로 옮겨졌다. 입금 출금 등 간단한 업무를 보는 단순창구는 출입문 가까운 곳으로, 신규 해약 대출 등 시간이 걸리는 업무를 담당하는 다기능창구는 객장 안쪽으로 배치됐다. 단순창구는 줄고 다기능창구는 느는 추세다.
영업장 안쪽에 상담코너를 마련하는 것도 유행. 지점장실은 VIP고객상담실 또는 프라이비트 뱅킹(PB)룸으로 개조됐다.
고객들의 반응은 어떨까. 단순창구 고객은 전보다 불편해졌다고 불만인 반면 고액예금자나 기업고객들은 은행 이용이 편안하고 편리해졌다는 반응이다.
“구조조정으로 인력은 크게 줄었는데 점포 수는 그대로입니다. ‘위’에서는 수익을 올리라고 야단이죠. 이런 상황에서 돈 되는 고객을 우대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돈 안되는 고객이 발길을 끊어도 이젠 할 수 없습니다.” 은행 관계자들은 이렇게 털어놓는다.
금융현장에 디마케팅(Demarketing)이 본격화되고 있다. 디마케팅이란 바로 ‘돈 안 되는 고객과 거래를 끊어버리거나 돈 안 되는 업무영역에서 과감하게 철수하는 영업전략’.
IMF한파가 한창일 때 일부 국내카드사들이 상습연체자들과 거래를 끊으려고 현금서비스 한도를 0원으로 한 것이 두드러진 예다.
그러나 대부분의 은행은 여전히 조심스럽다. 금융‘기관’이 섣불리 디마케팅을 시도했다가는 ‘몰매’를 자초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국내 금융 ‘회사’들은 우회적인 방법을 택했다.
2월초 17개 은행이 공과금 수납 대행수수료를 올려달라고 요구한 것이 그 사례다. ‘수납대행업무에 들어가는 비용이 수수료보다 크다. 당장 그만두고 싶어도 반발이 심해 그럴 수는 없다. 그러니 수수료를 올려달라’는 논리였다.
최근에는 차등금리제가 시도되고 있다.
차등금리제는 불량고객에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금리를 물리는 것이 아니라 우량고객에게 현격히 낮은 금리를 적용하는 것. 따라서 노골적인 디마케팅 기법은 아니다.
그렇다고 단순한 고객차별화도 아니다. 고객의 신용도에 따른 금리차가 워낙 크기 때문이다.
카드사인 대우다이너스는 24일 종전에는 연리 28% 안팎의 금리를 일률적으로 적용하던 현금서비스수수료를 고객의 신용도에 따라 10%에서 29%까지 차등화하기로 했다. 국내에서는 처음이다.
은행권에서는 하나 신한은행이 자동이체 실적이 많은 고객에게 예금금리를 올려주고 대출금리를 내려주는 상품을 개발중이다. 하나은행은 4월초에 새 상품을 선보일 예정.
금융전문가들은 제일은행을 인수한 뉴브리지캐피털과 서울은행을 인수한 HSBC가 국내영업을 본격화하면 다양한 디마케팅 기법이 보편화될 것으로 내다본다. 노골적인 디마케팅 기법도 소개될 것이라는 예상.
디마케팅이 고객에게 주는 의미는 뭘까. 현대경제연구원 천일영(千日英)연구위원은 “신용도에 따라 천당에 갈 수도 있고 지옥을 경험할 수도 있게 된다는 것”으로 요약한다.
〈이철용기자〉lc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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