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기관에 의한 계좌추적은 비록 형식적이나마 법원의 통제 아래 있다. 반면 세무관서 금융감독원 공정거래위 공직자윤리위 선관위 등에 의한 추적은 기관장의 ‘협조 요청’ 공문만으로 가능해 통제장치가 없는 셈이다. ‘영장주의’ 원칙의 예외가 너무 폭넓게 인정되고 있다. 세무관서 등 비수사기관에 의한 영장없는 계좌추적 건수는 작년 한해동안 8만5천여건으로 전년도보다 40%나 증가했다.
특히 협조공문 양식을 백지로 갖고다니다 즉석에서 이름을 적어 금융기관에 내미는 사례마저 있다니 부작용의 폐해가 심각한 실정이다. 게다가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법에는 계좌추적 요청시 거래자의 인적사항, 사용목적, 요구하는 거래정보내용을 명시하게 돼 있으나 잘 지켜지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공정거래위는 지난 1월 기업의 부당내부거래 조사를 명분으로 2년간 한시적으로 계좌추적권을 얻었고 감사원도 이를 끈질기게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들 기관은 계좌추적권을 가지려는 이유로 조사의 효율성을 내세운다. 효율성만을 따진다면 자유민주주의만큼 비효율적인 체제도 없을 것이다. 우리 사회는 정치적으로는 자유민주주의를,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를 기본으로 한다. 계좌추적의 남발은 자본주의의 근간인 신용사회의 기반을 흔들게 된다.
인권차원에서도 개인지갑을 마음대로 들여다 볼 수 있다면 감시사회인 ‘유리공화국’이 아니고 뭔가. 자유민주주의는 무엇보다 사생활의 비밀과 행복을 중시하는 체제다. 계좌추적권을 이기관 저기관에 마구 주면서 통제장치마저 두지 않는다면 권력 속성상 남용되지 않을 수 없다. 기관의 입장에서는 조사를 하는데 편리하기 때문이다. 남용은 결국 정치적 악용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우리의 시각이다. 야당측은 여당이 의원빼가기를 위해 계좌추적을 압박수단으로 활용해 왔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을 정도다.
따라서 계좌추적은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 이는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법에 명시돼 있는 원칙이기도 하다. 어떤 명분으로도 이 원칙을 뛰어넘어서는 안된다. 모든 계좌추적은 사전에 법원영장을 받게 하는 등의 엄격한 통제장치도 시급히 마련할 필요가 있다. 늦기 전에 계좌추적의 고삐를 단단히 잡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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