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인종청소」와 무력응징

  • 입력 1999년 3월 25일 19시 12분


코소보 자치권을 불허한 채 집단학살을 자행한 유고연방에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가 결국 대대적인 공습을 가하기 시작했다. 25일 1차 공습으로 유고는 다수의 사상자를 냈으며 앞으로 전투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 세계 이목이 쏠려있다.

공습의 원인을 제공한 것은 시대착오적인 대(大)세르비아 민족주의에 사로잡힌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유고연방 대통령이 코소보의 알바니아계 주민을 집단학살한 행위다. 세계를 분노하게 한 악행을 저지르고도 밀로셰비치는 코소보 자치권을 골자로 한 국제사회의 평화협상안을 끝내 거부했다. 그런 밀로셰비치가 이끄는 유고연방에 대해 나토는 무력행사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는 논리다. 나토는 냉전시대에 창설된 후 50년만에 처음으로 주권국가에 무력제재를 가했다. 나토의 19개 회원국 중 8개국이 참가한 이번 공습에는 평소 미국의 대외정책에 제동을 걸곤 하던 프랑스도 함께했다.

나토의 이번 군사행동을 유고에 대한 주권침해로 비판하는 시각이 있는가 하면 그 반대견해도 만만치 않다. 유고의 주권존중 보다는 밀로셰비치의 소수민족 학살행위를 제지하는 일이 인권차원에서 더 시급하다는 주장은 설득력을 갖는다. 유고연방군이 짓밟은 코소보에서는 무참하게 집단살해된 알바니아계 주민의 시체가 흙속에 묻혀있는 것이 수차 발굴됐다. 나치 독일의 히틀러가 자행한 유태인 학살을 연상케 하는 또 하나의 ‘인종청소’로 비난받아 마땅하다. 힘없는 소수민족이라 해서 생존권을 유린하는 것은 반인류적 범죄다. 그런 집단학살과 전범행위에 대해서는 소속 국가의 주권을 넘어 국제사회가 다스릴 수 있다는 것이 2차대전 후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의 판례다.

그러나 미국과 영국이 주도한 나토의 공습은 나쁜 짓을 나쁜 방법으로 다스리는 또 하나의 악행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평화주의자들의 비판을 받고 있다. 밀로셰비치의 반인류적 범죄에 대해서는 유엔이나 유럽안보협력기구 산하에 정식 국제재판소를 설치해서 다스리고 유고와 코소보 사이의 내전상태는 유엔 평화유지군을 보내 질서를 잡는게 옳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중국과 러시아가 나토의 이번 공습에 반발하는 이유도 유엔과 국제법을 제쳐두고 바로 미국이 주도해 공격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미국의 패권주의적 세계경찰 행위로 비판받아 마땅하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국제사회가 갈등양상을 보이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특히 한반도 관련 4자회담의 참가국인 미국과 중국이 이런 문제로 대립하는 것을 우리는 원치 않는다. 냉전종식 후 미국과 중국 러시아 간에 형성된 신데탕트가 흔들려서는 안된다. 더 이상의 확전(擴戰)을 막고 발칸지역의 평화를 보장하는 방안이 하루빨리 강구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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