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진영/「읍면동」살아난 이유?

  • 입력 1999년 3월 25일 19시 12분


『정말 부끄럽다. 읍면동 제도 폐지안은 수차례 외부에 연구용역을 주는 등 철저한 준비과정을 거쳐 마련했던 것이다. 이미 시범적으로 시행하고 있는 정책을 하루아침에 내팽개치다니….』(행정자치부 직원)

“시범실시 대상인 우리 구청은 최근 발간한 구정소식지에 동사무소의 기능이 전환된다고 홍보까지 했다. 지침을 내려보내며 재촉할 땐 언제고…. 이제 구민들한테 뭐라고 설명해야 하나.”(서울 성동구청 직원)

정부와 여당이 읍면동 제도를 폐지키로 했던 당초 방침을 백지화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주무부서인 행자부와 기초자치단체가 술렁이고 있다.

읍면동 폐지는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선거공약이었고 지난해 3월과 7월 대통령 업무보고 때 거듭 실시계획을 확인한 뒤 9월 정부안을 확정해 추진해왔다.

그동안 정부는 △행정계층이 시도―시군구―읍면동 3단계여서 비용이 많이 들고 △70년에 비해 읍면의 인구는 45% 줄어든 반면 공무원수는 44% 증가해 읍면동 개편이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갑자기 “읍면동 폐지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며 주민화합을 도모하는 데도 문제가 있다”고 말을 바꾸었다. 내년 총선을 의식한 정치권의 입김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정부는 최근 조직개편 과정에서 국가홍보처와 기획예산처 2개처를 신설해 몸집을 불린데 이어 지방정부 구조조정도 미루고 있다.

정부의 이같은 뒷걸음질은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감수한 민간기업과 시민들만 실망시키는 것이 아니다. 소신껏 추진해온 정책을 하루아침에 철회하며 “부끄럽다”고 말해야 하는 공무원들의 사기도 꺾는 일이다.

이진영<지방자치부>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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