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기야 구호(口號)에 그치는 것이 어디 그 뿐인가. 겉과 속이 다른 정책과 제도가 넘치다보니 스쿨존이란 것도 관계부처들이 예산 많이 따내려고 고안해낸 탁상작품이 아니었을까 하는 의심마저 든다. 그러면서도 스쿨존은 정치적 구호들에 비하면 훨씬 절실한 현실문제여서 지금부터라도 관계기관과 시민들이 좀더 노력해 실효(實效)를 거두었으면 싶다.
▽무늬는 그럴듯하지만 가장 공허하고 소모적인 말은 역시,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정치적 구호에 많은 것같다. 정권의 한시적 ‘세입자(貰入者)’가 바뀔 때마다 새롭게 내세우는 통치철학이니, 국정이념이니 하는 것들 가운데 그런 게 많다. 가장 가까운 전(前)정권인 김영삼(金泳三·YS)정권의 경우는 ‘신경제’ ‘세계화’ ‘역사 바로 세우기’ 등으로 이어나간 구호들을 국제통화기금(IMF)에 매몰시키면서 막을 내려야 했다.
▽현정권마저도 몇년 뒤에 YS정권과 비슷한 ‘구호의 몰락’을 맞는다면 그것은 정권의 비극이기 이전에 국민적 비극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김대중(金大中·DJ)정부가 강조하는 ‘DJ노믹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발전’ ‘제2의 건국’ 등이 시험대에 올려져 있는 상황이다. 이미 곳곳에서 빨간 점멸등이 켜지기 시작한 ‘개혁’도 마찬가지다.
〈배인준 논설위원〉inj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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