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김창혁/與사무총장의 「보선 폐지론」

  • 입력 1999년 3월 28일 19시 43분


6공말인 90년 대구 서구 보궐선거 때의 일.

당시 여당인 민자당은 무소속으로 출마한 정호용(鄭鎬溶)후보를 떨어뜨리고 자신들이 공천한 문희갑(文熹甲)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여당 의원들을 선거구 ‘동책(洞責)’으로 임명, 선거운동에 나서게 했다.

선거는 과열됐고 관권 금권선거의 극치라는 비난이 빗발치듯 쏟아졌다.

이후 재 보선 때 국회의원들을 동책으로 동원하는 게 관행처럼 굳어졌고 현 정권에서도 이 관행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그래도 민자당은 쉬쉬하며 부끄러워했으나 지금의 여당의원들은 아예 내놓고 “나는 무슨 동 담당”이라며 회기 중인 국회마저 내팽개치고 있다.

이런 상황이 스스로 한심하게 생각됐는지 국민회의 정균환(鄭均桓)사무총장은 27일 기자간담회에서 “여야가 재 보선에 당력을 집중 투입함으로써 여러가지 폐단이 나타나고 있다”며 재 보선 폐지방안까지 거론했다.

정총장은 간담회 내용이 파문을 일으키자 즉각 “투표율이 낮으면 지역구의원의 대표성이 없게 되고, 투표율을 높이기 위해 중앙의 개입이 심해지면 국력낭비가 많아 보완장치가 필요하다는 개인의견을 말한 것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그냥 넘겨버리기에는 발상이 너무 어이없고 황당하다.

정총장의 얘기를 뒤집어보면 ‘3·30’재 보선이 엄청난 문제를 안고 있다는 의미인 것 같다. 그리고 여당도 그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을 인정하는 듯하다.

그렇다면 나머지 선거기간에라도 발벗고 나서서 문제를 시정하겠다고 다짐하는 게 상식에 맞는 자세이지, 마치 ‘이번은 그렇게 치르더라도 차후에는 되풀이되지 않도록 아예 재보선 제도를 없애자’는 게 무슨 말인가.

김창혁<정치부>c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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