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면서 방송이 얼마나 정치권력에 지배당하고 있는가를 뼈아프게 체험하며 고뇌했다. 임기를 다 채우지 않고 방송위원장직을 내놓았던 것도 방송이 권력에 지배당해서는 안된다는 소신 때문이었다.
▼독립-공익성에 중점 ▼
지난해 정부로부터 방송개혁위원회 위원장직을 맡아달라는 제의가 들어왔을 때 과연 그 일이 팔십이 넘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인가 하는 생각에 많이 주저했다. 그러나 그동안 축적된 내 경험과 연륜이 방송개혁을 위해 필요할 것도 같았고 방송을 주인인 국민에게 돌려주기 위한 사명감을 느껴 결국 수락하게 됐다.
방송개혁위원회는 2개월반이라는 짧은 기간 안에 개혁안을 만들라는 과업을 부여받았다. 그 일을 하기 위해 14명의 방송위원들과 30여명의 실무자들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땀을 흘렸다.
방송을 어떻게 개혁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놓고 내가 주안점을 둔 것은 두가지였다. 첫째는 방송의 독립성 보장. 방송의 위력과 방송이 특정권력에 종속될 때 야기되는 해악에 대해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나는 그 문제를 정치민주화 과업에 못지않은 혁명적 과업이라고 생각했다.
방송은 정치집단이나 기업, 이익집단으로부터 독립돼 전체 국민을 위해 봉사해야 한다. 민주주의 국가의 공통점은 방송이 행정부로부터 독립돼 있는 것이다. 우리가 만든 개혁안은 독립적인 방송위원회가 방송을 관장하도록 돼 있다. 위원들은 대통령과 국회가 각 3인을 임명하고 시청자 대표 3인은 국회 문화관광위원회에서 배수 추천한 사람들 중 대통령이 임명한다.
각 정당은 자기 당에 할당될 위원 수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 같은데 방송위원회는 합의제 행정기구 형태다. 위원 구성은 대표성과 전문성을 함께 고려했다. 부위원장과 상임위원은 전문성을 고려했고 비상임위원은 대표성을 고려해 여성과 시청자 대표를 참여시켰다.
방송위원회의 권한이 너무 막강하다는 비판도 들렸다. 그렇다면 그 권한을 방송위원회가 아닌 어디에 주자는 것인가. 예전처럼 행정부에 맡기자는 것인가. 아니면 금력에 놀아나도록 놔두자는 것인가.
개혁안은 시청자의 권한을 많이 늘렸다. 시청자가 프로그램 평가에 참여할 뿐만 아니라 주1회 60분 이상 시청자 평가 프로그램을 만들도록 했다. 시청자 반론권의 기간을 종전의 1개월에서 3개월로 늘렸다.
두 번째 주안점은 방송의 공익성 문제였다. 동서와 남북간의 화해, 성별 세대 빈부간의 양극화 해소 등에 공헌하고 우리 고유의 문화를 만들고 지키기 위해 프로그램의 혁신이 필요하다는 인식 아래 많은 제안들이 있었다.
공중파 방송은 보도와 편성에 주력하고 대부분의 프로그램은 외주를 통해 제작함으로써 경쟁원리를 통해 프로그램의 질을 높이는 방안 등을 제시하긴 했으나 솔직히 아직도 미흡하다고 생각한다.
▼金力배제는 숙제로 ▼
특히 방송사가 광고주의 금력에 지배되는 데서 생기는 폐해에 대해 확실한 해결책을 찾기가 힘들었다. 지속적으로 논의해야 할 숙제라고 생각된다.
이번에 방송개혁위원회를 이끌면서 세상이 많이 달라졌다는 것을 느꼈다. 새로 등장한 뉴미디어 등으로 방송문제도 복잡다단해졌고 전에는 정치권력하고만 싸우면 됐으나 이번에는 막강한 자본, 방송계의 이익집단과도 맞서야 했다. 영화 ‘하이눈’에서 사방에서 자기를 겨누고 있는 총구를 느끼며 긴장으로 가득찬 거리에 혼자 서 있던 게리 쿠퍼의 심정 같았다고나 할까.
이번 개혁안이 우리 방송이 진정한 국민의 방송으로 태어나도록 하는데 기여하리라고 믿고 싶다.
강원용<크리스챤아카데미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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