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신치영/공정거래위「고무줄 잣대」

  • 입력 1999년 3월 29일 19시 32분


국가정책을 집행하는데 과거 국세청은 약방의 감초였다. 툭하면 서슬퍼런 세무조사권이 전면에 등장했다. 물가안정시책은 물론이고 제품가격을 올리거나 심지어 과도하게 임금을 올리는 기업에 대해 특별세무조사 운운하며 협조를 강요해왔다.

세무조사권이 조세정의를 실현하는 도구가 아니라 ‘기업 길들이기’ 수단으로 이용돼 온 것이다.

요즘 막강한 공정거래위원회가 국세청의 나쁜 점만 닮아간다는 소리가 재계엔 파다하다.

전윤철(田允喆)공정거래위원장은 29일 대통령주재의 국정개혁보고에서 “지난해 12월7일의 정재계 합의사항을 지키지 않는 5대그룹에 대해 4,5월경 집중적인 부당내부거래 조사를 실시하겠다”고 말했다. 재벌이 정부의 재벌개혁정책을 따르도록 만들기 위해 부당내부거래조사권을 무기로 삼겠다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정부의 재벌구조개혁정책을 잘 따르는 그룹은 부당내부거래조사의 철퇴를 맞지 않을 것이라는 말로도 들린다.

이미 지난해 1,2차 부당내부거래조사때도 5대그룹은 공정위의 처벌에 일제히 반발했다. 공정위의 자의적인 기준에 승복할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또 자동차회사의 임직원에 대한 강매조사에서 유독 대우자동차만이 처벌을 받은 데 대해 재계에는 ‘대우그룹이 밉보였기 때문’이라는 소문이 나돌기도 했다. 소문의 사실여부를 떠나 공정위의 기준이 오락가락하는 것으로 비춰지고 있다는 증거다.

재벌의 방만한 선단식 경영과 그 도구가 된 재벌 계열사간 부당내부거래는 마땅히 근절되어야 한다. 하지만 정부가 ‘이럴 경우에는 처벌하고 저럴 경우에는 예외로 인정해주겠다’며 필요에 따라 다른 기준을 내놓는다면 누가 승복하겠는가. 정부 스스로 재벌에 반발의 구실을 주는 것과 다름없다.

신치영<경제부> higgle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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