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GO/빈민 여성운동]사랑으로 밝히는 「가정 지킴이」

  • 입력 1999년 3월 29일 19시 32분


『새벽, 불빛에 눈이 부셔 눈을 떴다. 아빠가 부엌 문턱에 걸터앉아 머리를 숙이고 계셨다. 아침에 아빠는 주인집에 가야했다. 주인 아줌마와 아빠가 얘기하는 모습은 생각만해도 두려웠다. 어느 날 아빠는 술을 드시고 나에게 말씀하신다. ‘선희야, 아빠는 너무 힘들어’….』(경기 안산시 원곡동 ‘예은 신나는집’ 어린이의 글)

가난하고 고된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 그중에서도 여성들을 돕겠다고 나선 빈민여성운동단체들.

아이가 굶지 않도록, 엄마가 가출하지 않도록 애쓰고 있다는 점에서 여성운동보다는 빈곤가정운동에 가깝다.

전국 34개 지역에서 결식아동 무료급식소인 ‘신나는 집’을 운영하고 있는 부스러기선교회(02―365―1265).

선교회는 공단과 도시빈민지역에서 취업 주부들의 자녀를 돌보기 위한 탁아 및 공부방연합체로 발족했으나 IMF체제로 결식아동이 급증하자 무료급식소 운영에 주력하고 있다.

재개발사업으로 아파트공사와 기반조성공사가 진행중인 서울 관악구 봉천5동 ‘희망 신나는 집’. 오후 6시가 되면 현관문 앞에는 운동화들이 수북이 쌓인다. 초등학생과 중학생 50여명이 이곳에서 밥을 먹기 때문.

“부모의 실직이나 가출, 이혼 등의 문제가 있는 위기가정이나 결손가정인 경우가 많다”고 사회복지사 윤영희(32)씨는 전했다.

결식아동문제는 밥 한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며 해당아동의 정서불안 집단따돌림 가족해체 등의 문제와 함께 해결해야 한다는 게 윤씨의 설명.

혼혈아를 포함해 결식아동 20여명에게 식사를 제공하고 있는 경기 평택시 신장동 ‘나눔이네 신나는 집’의 경우 문제는 좀더 복잡하다.

책임교사 전민수(田敏秀·33)씨는 “혼혈아의 경우 엄마와 함께 사는 편모가정이 대부분인데 엄마가 클럽의 웨이트리스로 일하는 등 기존 생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빈곤가정의 모성포기와 가출문제를 예방하기 위해 빈민여성에 대한 교육과 자활지원 움직임도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다.

소외계층 주부들에게 삶의 자신감을 되찾아 주기 위해 탄생한 지역여성공동체인 서울 노원구 중계동 상계어머니학교(02―938―2609)도 그 활동의 하나.

90년 빈민운동을 하던 여성들이 상계3동 철거민촌에 공부방을 마련하고 주부들에게 한글 가르치기 등 기초교육을 실시하면서 출발했다. 현재 70명의 주부가 한글 한문 기초영어 등을 배우고 있다.

경기 동두천시 생연동 동두천야학(0351―867―1506)은 인근 빈민지역 주부 1백여명을 대상으로 한글반과 함께 초등반 및 중등반을 운영하고 있다.

40, 50대 주부는 가난 때문에 학교에 다니지 못한 경우가 많고 20, 30대는 결손가정에서 자라나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

빈민여성교육선교원(02―392―4630)은 올해중 빈민여성의 자활을 돕기 위해 안산공단지역에 공동작업장과 부업작업장을 설치해 지역주민 자치조직활동으로 확산시킬 계획이다.

빈민여성운동의 ‘대모’ 강명순(姜命順·47)부스러기선교회 협동총무는 “결식아동이 집단따돌림 때문에 학교 다니기를 포기하고 가출하거나 학습진도를 따라가지 못할 경우 10대 문맹자도 급증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강총무는 “국민의 동정심을 자극하거나 민간단체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정부가 나서서 결식아동의 급식과 사회부적응문제를 해결하고 빈민여성이 자활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줌으로써 해체가족의 ‘원상회복’에 힘써야 한다”고 주문했다.

〈김진경·홍성철기자〉kjk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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