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 보면 97년 금융개혁 입법파동의 ‘태풍의 눈’이 한은법 개정문제였다. 재정경제원(현 재정경제부)과 한은은 이 문제로 다투느라 외환위기에 제대로 손발을 맞추지 못했다. 그런 엄청난 국가적 비용을 치르고 나서야 한은법을 개정해 중앙은행의 독립을 법률로 명시한 것이다.
그런데도 지난 1년간 한은의 독립성이 신장됐다고는 평가할 수 없다. 법조문대로 한은의 통화신용정책이 중립적으로 수립되고 자율적으로 집행됐다고 볼 수 없다. 법개정 이전과 마찬가지로 통화 및 금리정책의 주도권은 재경부가 쥐고 흔든다. 한은은 몇차례 반론을 펴는 듯했지만 결국은 재경부의 선택에 따르면서 ‘독자적인 결정’이라고 포장하기에 급급했다. 법에는 한은이 정부와 협의해 물가안정목표를 정하고 이를 포함한 통화신용정책 운영계획을 수립 공포하도록 돼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재경부가 여당 및 국제통화기금(IMF)과 협의해 물가목표 등을 정했다. 한은은 또 금융기관에 대한 검사 및 공동검사 요구권을 갖고 있지만 금융감독위원회의 기세에 눌려 이를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
중앙은행이 정부의 간섭을 최대한 배제하고 통화신용에 관한 룰을 정해 집행할 수 있어야 통화가치의 안정과 금융자원 배분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정부가 한은을 무력화시키면 정부 경제정책에 대한 견제와 균형의 일각이 무너지게 된다. 재경부 독주의 폐해는 이미 충분히 검증됐다. 그런 배경 아래에서 한은 독립이 추구돼왔다.
그럼에도 한은이 계속 재경부에 눌려 있는데는 한은에 대한 재경부의 예산승인권 행사가 현실적으로 작용한다. 예산승인권은 조직 및 인사에도 바로 영향을 미친다. 결국 한은의 통화신용정책 운영권이 경제정책 조정권을 행사하는 재경부에 흡수되기 쉬운 구조인 셈이다. 그런 점에서 한은에 대한 예산승인권을 예산청으로 이관하는 방안도 검토해 봄직하다.
한은 스스로 자기개혁에 박차를 가할 것도 요구된다. 한은이 오랜 세월에 걸쳐 개혁무풍지대였던 점이 경쟁력 없는 조직을 만들었고 제목소리를 내는데 한계를 자초했다. 전철환(全哲煥)총재의 리더십에 대해서도 ‘조용히 할 일을 한다’는 평가도 있지만 ‘추진력과 독자적인 목소리가 없다’는 지적이 우세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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