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정대화/유권자들 「침묵」의 메시지

  • 입력 1999년 3월 31일 20시 09분


「열전 16일」의 재보궐선거가 끝나고 투표결과가 채 드러나기도 전에 선거제도 개선의 필요성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여야 정당은 합동연설회를 폐지해 중앙당의 개입을 줄이고 선거사범에 대한 재판절차를 간소화하며 재보궐선거 요건을 제한하는 등 개선안을 주장하고 있다. 왜 이제와서 뒤늦게 제도개선을 주장하는 것일까. 선거풍토가 몇가지 제도개선으로 개혁될 수 있을까.

▼문제투성이 재-보선

4·30 재보선은 시작부터 문제를 야기했다. 공천과정이 투명하지 않았고 선거 초반부터 중앙당의 지나친 개입이 여론의 도마에 올랐다. 선거 중반 이후에는 관권 금권시비가 끊이지 않았으며 이에 따른 고발과 맞고발이 줄을 이었다. 끝까지 문제투성이의 선거였던 셈이다. 선거가 끝난 후에도 선거로 인한 후유증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정당은 최고의 정치조직이고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한다. 모두 민주주의를 칭송하는 말일 것이다. 그렇다면 현대 민주주의를 이끌어 가는 ‘최고의 정치조직’이 ‘민주주의의 꽃’을 피우는 자리에서 야기되는 심각한 문제점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4·30 재보선의 가장 두드러진 문제점은 2명의 국회의원과 1명의 기초자치단체장을 선출하는 단순한 지역선거였음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과열됐다는 점이다. 과열선거는 과잉참여를 의미한다. 문제는 유권자의 과잉참여가 아니라 정치권만의 과잉참여로 끝났다는 데 있다. 선거 현장은 지나치게 과열된 반면 현장에서 벗어나 있는 일반 유권자들은 지나치게 냉정했다. ‘뜨거운 침묵’이라고나 할까. 아니면 ‘과열과 침묵의 공존’이라고나 할까.

정치권의 과잉참여는 중앙당이 사활을 걸고 조직적으로 개입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중앙당의 개입 논리를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국회의원선거를 지역구 ‘대통령선거’인양 목숨걸고 뛰어드는 정치현실은 볼수록 안타깝기 짝이 없다. 국민의 대표를 자임하는 선량들이 회기중 국회를 비우고 동책이니, 반책이니 하면서 남의 선거구를 어슬렁거리는 광경을 어떻게 칭찬할 수 있겠는가.

정치권의 과잉참여는 지역구 선거에서 정치정세를 읽으려는 욕심에서 비롯된다. 정권에 대한 ‘중간평가’라는 비정상적인 논리 역시 과잉개입을 촉발하는 요인이다.

정치권의 과잉참여와 중앙당의 지나친 개입이 유권자들의 심리적 거부감을 자극해 유권자의 참여가 낮아졌다는 지적을 경청할 필요가 있다. 그 때문에 ‘유권자의 축제’여야 할 선거가 정치권 ‘그들만의 축제’로 변질돼버렸다.

▼정치현실 부정 아닌지

출발이 잘못된 선거는 진행과정에서도 문제점을 드러냈다. 금배지를 향한 ‘진흙밭 투쟁’은 ‘만인의 만인에 대한 싸움’이 전개되는 정글을 연상시킬 정도로 혼탁했다. 유권자들은 안중에도 없었고 유권자들을 감안한 정책적 배려도 드물었다.

오로지 “제일 잘난 저를 뽑아주십시오” 한마디만 있었다. 가히 50년대에나 있었음직한 ‘정책의 과소와 인격대결의 과잉’ 그대로 였다.

그러니 ‘당신들의 축제’에서 이긴 당선자들은 샴페인을 터뜨리겠지만 유권자들은 침울하고 침통하고 허탈할 뿐이다. 민주주의를 이룩하고 지방자치를 실시하면서 지역의 대표를 제손으로 뽑았다는 자부심 가득찬 승리감은 눈씻고 찾을 길이 없다. 40%를 밑도는 낮은 투표율, 20%대의 유권자 지지율은 축제의 한마당을 공허한 선거로 바꾸어 놓기에 충분하다. 낮은 투표율이 정치적 불신과 정치적 무관심의 공동의 산물이라면, 이번 선거의 양상과 선거결과가 정치에 대한 거부감으로 발전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국회에서 정치특위가 구성돼 선거개혁을 포함한 정치개혁이 논의되는 상황에서 수도권 세 지역에서는 선거개혁에 역행하는 정치적 실험이 자행됐다. 불행한 일은 정치개혁을 주도할 선량들도 국민의사에 반하는 혼탁한 선거에 일조했다는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누가 선거를 개혁하고 정치를 개혁할 것인가. 많은 사람들은 정치를 ‘현실’이라고 한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유권자들의 ‘무거운 침묵’의 의미는 그 ‘현실’을 부정하라는 것이 아닐지.

정대화(상지대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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