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우리의 세계가 아니야.
네? 아버지 뭐라구요?
너의 길을 걸어라, 세상이 어떻게 떠들든지….
어딜 가신다구요?
가야지….
그러고는 그냥 잠으로 빠져 드는 거였죠. 다시 돌아가시기 몇 시간 전까지 정신이 말짱해져서 과일즙도 많이 드시고 나직하고 힘은 없었지만 나에게 도란도란 이야기도 많이 하셨어요.
얘, 글쎄 말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마지막 무렵이 되면 자기 잘못을 정확히 알게 되고 또 자신을 용서하게 되더구나. 나는 절대로 그때를 후회하진 않겠다. 그렇지만 그런 길 밖에 없었을까 하구 생각해 볼 때가 많아. 그래, 세상에서 지어낸 삼라만상은 부처님 말씀처럼 세상이 지닌 한계만큼의 꼴로 나타나기 마련이지. 내 동료들이 꿈 꾸었던 세상은 그저 허공중에 빛나는 별에 지나지 않았다. 이제 양쪽을 보니까 서로 거울을 맞대놓은 듯이 그저 사람살이의 좌우가 바뀐데 지나지 않았어. 내용은 서로 싸우는 동안에 서로를 닮게 되었다고나 할까. 그러나 사람 세상의 이 미완은 멋있지 않니? 미처 무슨 일을 해내기 전에 같은 무렵에 살던 모두가 죽어버리니까. 불교에서 그걸 뭐라고 하더라. 백년 후에는 현재 세상에 살고있던 모두가 존재하지 않는댄다. 그맘때 사람들은 모두가 새 사람들이지. 그렇게 거듭된단다.
어머니가 다니는 교회 목사님이며 집사 권사님들이며를 모시고 아버지 방에 들어서자 아버지는 가까스로 일어나 앉더니 목사를 향해 똑바로 바라보면서 말했어요.
나는 종교에 대해 무슨 편견을 가지구 있지는 않습니다만, 전에 안하던 짓은 딱 질색이오. 내 죄에 대하여 뉘우치고 있으나 고칠 시간은 인제 없는 것 같소.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면 여러분 자신을 위해서 조용히 기도 드리고 나가는 건 허용하겠습니다.
어머니에겐 참으로 야박한 처사이셨지만 나는 어쩐지 그런 아버지가 당당해 보이더군요. 그렇지만 아버지는 목사가 아버지의 병의 고통과 마음의 안식을 위하여 기도를 했을 적에 자신도 눈을 감고 조용히 누워 있었어요. 기도가 끝나자 우리 교회 교인들은 이 위엄에 가득찬 환자를 남겨두고 조용히 물러갔어요.
어머니와 내가 아버지의 머리맡을 지키며 밤을 새웠는데 아버지는 촛불이 꺼져 가듯이 서서히 사그라들더군요. 그러다가 아버지는 느닷없이 눈을 번쩍 뜨고 고함을 지르기도 했어요.
이대로 죽을 수는 없어!
그러면 어머니가 허공에 움켜쥔 아버지의 두 손을 잡아 가슴에 모아주는 것이었지요.
여보 제발 마음에 평화를….
아버지는 또 젊을 때 부르던 노래를 중얼거리기도 했구요.
우리는 누리에 붙는 불이오 철쇄를 마스는 망치다 희망의 푯대는 붉은 기요 외치는 구호는 투쟁뿐….
윤희 아버지 이젠 그만, 우리 기도해요.
아버지의 마지막 숨이 가빠지고 피가 기도에 걸려 갈그랑대는 소리가 들리며 괴로워 하자 어머니는 울음을 터뜨렸어요.
이젠 그만 가슈. 어서 가셔요.
아버지는 그 밤에 교인들이 준비했던 관에 담기셨어요.
<글:황석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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