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가 손을 잡고 ‘만남’을 합창하는 모습은 기아가 다시 태어나는 순간으로 기억되기에 충분했다. 좀처럼 웃음을 보이지 않는 현대자동차 정몽구(鄭夢九)회장도 이날만은 2만여명의 근로자 틈 속에서 함박웃음을 터뜨렸고 노조원들도 합창으로 새출발의 각오를 다졌다.
아쉬운 것은 이날 행사장에 노(勞)측 대표인 고종환노조위원장이 참석하지 않았던 것. 지난달 ‘무분규 노사화합’을 선언해 민주노총으로부터 중징계를 받은 뒤 노동계의 ‘눈총’이 부담스러워서였을까. 그는 “개인적인 사정이 있다”며 끝내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고위원장은 무분규선언 때 많은 고심을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민주노총 핵심 노조위원장’과 ‘회사를 살려야 하는 근로자대표’라는 상반된 입장에서 마음의 갈등이 컸을 것이다. 무분규선언을 하던 날 “외부에 알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한 말은 그가 감당해야 했던 고뇌의 깊이를 짐작케 해준다.
강성으로 치닫던 기아차노조가 ‘기업회생 없이는 고용보장도 무의미하다’는 대전제에 합의하고 생산현장에 뛰어든 것은 그의 용단(勇斷)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노동계가 또다시 총력투쟁 의사를 밝히고 있는 요즘 기아차 노사의 새로운 ‘만남’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기아차 노조의 결단에 보냈던 사회의 박수소리와 일부 노동계의 강한 기아노조 비판을 모두 경험한 여타기업의 노조들에 이날 기아차 행사는 여러가지를 생각케 해주는 것이었다.
노사 모두를 살리기 위해 노력하고도 고뇌를 떨쳐내지 못하는 한 노동지도자의 모습은 우리 노동운동의 현주소를 말해주는 것이 아닐까.
박정훈<정보산업부>hun34@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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