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GO 인터뷰] 박천우 前삼환아파트 입주자대표회장

  • 입력 1999년 4월 5일 19시 28분


『회장님이 우리 업체와 계약만 해주면 고급승용차 한대를 빼드리겠습니다.』

97년 경기 수원시 구운동 삼환아파트 입주자대표 회장을 지낸 장안대 박천우(朴千佑)교수는 난방용 기름 공급업체 직원이 한 말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수원시민광장 등 시민단체에서 활동하던 박교수는 “차는 필요없으니 기름값에서 차 살 돈만큼을 공제하라”고 되받았다. 관리비를 줄여달라는 주민들이 회장으로 뽑아준 만큼 업체와의 리베이트 관행을 없애기로 작정한 것.

박교수는 이후 관리비를 줄일 수 있는 비결을 찾아나갔다. 우선 전기와 보일러 등 아파트 관리 각 분야의 전문가를 주민 가운데서 찾아 대표로 선출했다. 이들의 전문지식을 활용하자는 취지.

대표들에게는 적정한 활동비를 지급하도록 했다. 최소한의 보수가 있어야 업체의 ‘뒷돈 유혹’에 넘어가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97년에는 가구당 매달 1천원씩을 거둬 활동비로 썼다.

각 용역업체는 수의계약 대신 공개경쟁 입찰로 최저가를 써낸 곳을 선정했다. 입찰에 앞서 주민들의 도움을 받아 인근 아파트단지의 가격을 수집해 최저가가 아니면 유찰시켰다.

화재보험은 대리점을 직접 찾아가 보험료를 낮추었다. 박교수는 “이런 방법으로 보험료를 종전의 절반 정도로 할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청소비도 실제 청소한 면적만 산정했다. 전에는 거실 등 총평수로 계산했다.

소독비의 경우 1년에 최소 4회 이상의 규정을 지켜 불필요한 소독을 하지 않았고 맞벌이 등으로 소독하지 못한 가구의 면적은 비용을 계산할 때 뺐다.

이같은 관리비 절감 요령은 박교수가 회장에서 물러난 98년에도 후임 대표들이 그대로 채택했다. 박교수는 이후 강연을 요청하는 전국의 아파트를 찾아가 이 절약비결을 알려주는 전도사 역할을 하고 있다.

박교수는 작년에 이사온 수원시 화서동 한진현대아파트의 관리비도 줄여나가고 있다. 박교수의 ‘명성’을 들은 주민들이 그를 대표회장으로 선출한 것.

그는 “관리비 절감에서 얻은 경험으로 국민이 낸 국세와 지방세가 어떻게 쓰이는지 공개하도록 정부에 요구할 계획”이라며 “생활의 터전인 아파트 관리비를 줄였다면 세금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진기자〉lee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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