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김영삼前대통령의 착각

  • 입력 1999년 4월 7일 20시 43분


김영삼(金泳三)전대통령이 6일 경남 통영시에서 한 발언이 큰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김전대통령은 현정권이 언론탄압 야당파괴 인권탄압 부정선거 등을 자행하는 독재정권이라며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독재자’라고 규정했다. 김전대통령의 이같은 발언은 작금의 정치현실을 볼 때 일부 일리가 있는 대목도 엿보이기는 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 발언이 사전에 충분히 계산된, 전직 대통령의 구시대적 정치 행위라는데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김전대통령은 이날 한나라당의 민주계의원 및 지구당 당직자, 옛 야당동지 1백명이 모인 자리에서 미리 준비한 메모지를 보며 조목조목 현정부를 비난했다. 단순한 일회성 불만이나 분노의 표현이라기보다는 어떤 정치적 목적을 가진 의도된 행동이었다. 그가 최근 한나라당 의원들이나 재임당시 청와대비서진을 상도동 자택으로 불러 세(勢)결집을 과시하려 한 사실과도 상통한다. 그래서 내년 16대 총선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세를 확보해보려는 계산된 행보가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그러나 김전대통령이 정말 정치적 재기를 노리고 있다면 그것은 개인은 물론 나라 전체로도 부끄럽고 불행한 일이다. 전직대통령은 국가 원로로 남아 필요할 때 정치적 자문과 조언을 해 주는 정도의 역할만 하면 그만이다. 미국의 전직 대통령들이 그 좋은 예다. 개인적으로도 대통령을 지냈으면 그에 걸맞은 존경과 명예를 지키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정치적으로 최고의 성취를 한 사람이 무엇을 더 바라겠다는 건가.

김전대통령의 ‘행차’모습도 보기에 민망하다. 민주투쟁에 앞장섰다는 전직대통령이 다시 과거 세를 모아 패거리 정치 모습을 보인다면 그것은 그야말로 역사를 거꾸로 돌리려는 행동이나 다름없다. 더구나 그는 자신의 정치적 기반이었던 PK지역에서 그같은 발언을 했다. 누가 보아도 지역정서를 활용하겠다는 속셈이다. 그러잖아도 지역대립이 곳곳에서 국가 발전의 발목을 잡고 있는 현실이다. 전직대통령이 그러한 지역감정을 다시 자극하고 그 물결을 타려 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특히 김전대통령은 환란의 책임을 피할 수 없다. 지난 실책에 대해 반성하며 자중하고 근신해야 옳다. 그것이 국민의 일반적인 정서이며 주문이다.

김전대통령을 비롯한 전직 대통령들이 또다시 정치 일선이나 조종세력으로 나서려는 데는 현 정권도 어느정도 책임이 있다고 본다. 정치가 국민의 기대수준에 미치지 못하고 정부의 실책이 곳곳에서 드러나기 때문에 구세력의 개입 틈새가 생기는 것이다. 흘러간 물로 다시 물레방아를 돌리려 하는 것도 시대착오적인 과욕이지만 그런 분위기를 만들고 있는 현 정권의 책임도 작지않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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