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예종석/중산층을 살리자

  • 입력 1999년 4월 8일 19시 33분


중산층이 무너지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 초기에 정부가 택해야 했던 고금리 정책과 강력한 구조조정 정책은 우리 사회의 계층간 소득불균형 현상을 심화시켜 소득구조의 양극화 조짐마저 나타나고 있다. 일부 고소득층은 소득이 늘었으나 나머지 계층은 소득이 줄어 이제 중산층은 상당수가 저소득층으로 전락하고 있다. 자신을 스스로 중산층이라 생각하던 계층마저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일찍이 사회계급의 양극화로 중산층이 몰락하리라던 마르크스의 망령이 되살아나는 것 같아 두렵기까지 하다.

▼소득구조 양극화 조짐 ▼

중산층은 서럽다. IMF사태로 소득은 줄었는 데도 세금부담은 늘어나고 있으며 고물가의 위협 속에 실업의 고통과 맞닥뜨리고 있다. 통계에 의하면 IMF 사태 이후 고소득층은 소득이 늘어난 반면 중산층은 크게 감소했고 고소득층의 세금부담은 준데 반해 중산층의 세금부담은 오히려 큰 폭으로 늘어났다. 지난 한 해 동안 상장법인 임직원 6명 중 1명이 퇴출당했으며 그 중에서도 화이트칼라의 감원 폭이 더욱 큰 것으로 나타났다. 보유하고 있던 부동산이나 주식시세는 폭락해 깡통계좌는 물론 집값으로 전세금을 못물어내는 깡통주택을 양산하기까지 했다. 이러한 고통을 감내하고 있는 중산층을 우리 사회는 IMF사태 초기 한때 과소비의 주범으로 매도하기까지 했고 이제는 건전소비를 안한다고 핀잔을 주는 실정이다.

중산층은 우리 사회의 봉이요, 동네북이다. IMF사태로 온 국민에게 고통의 분담을 호소하던 정부는 고금리를 향유하던 고소득층에는 금융소득종합과세 실시유보라는 선물을 하면서 서민들의 소액저축 이자에 붙는 세금은 대폭 인상했고 비과세, 세금우대저축은 상당수 없애버렸다. 또 세수부족이 예상되자 고소득자나 저소득자에게 무차별 적용되는 간접세 비중을 높여 저소득층의 세금부담을 상대적으로 올려놓았다.

이렇게 불평등한 처우를 받으면서도 중산층은 여전히 침묵하고 있다. 우리 사회는 침묵하는 자에게는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다. 노동자는 불이익을 당하면 노조가 목소리를 높여 권익보호에 나선다. 이 경제위기 상황에서도 정부는 노사정위원회를 통해 노동자와 협상을 독려하고 저소득층의 실업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사용자는 사용자대로 이익단체를 통해 자신들의 몫을 꾸준히 챙기고 있다. 고소득층도 저소득층도 각자 나름대로 자신들의 권익을 찾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중산층이라는 애매모호하고 결속력 없는 다수의 입장은 아무도 대변해 주지 않고 있으며 스스로도 우리 사회의 희생양임을 자임하고 있는 듯하다.

▼세금부담 줄여줘야 ▼

중산층은 지난 오랜 세월동안 사회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해왔으며 지금 이 시점에도 경제위기 극복의 중추에 서 있다. 그들은 가진 자와 못가진 자의 가운데에 서서 사회의 안전판 역할을 하기도 한다. 안전판은 클수록 좋다. 이제 우리 사회는 중산층에 관심을 갖고 중산층을 키워나가야 한다. 그들에게 비전을 제시하고 근로의욕을 북돋워 새로운 도전에 나서게 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경제를 살리고 사회를 안정시키는 지름길이다. 그동안 불이익을 당해온 중산층에 세제를 보완해서라도 형평을 맞추어야 한다. 기쁨은 나눠갖지 못한다 하더라도 고통은 골고루 나눠 가져야 한다. 소득을 늘려 줄 수는 없다 할지라도 결코 고소득자보다 많은 비율의 세금을 내게 해서는 안된다. 세금은 공평해야 한다.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이 있다는 대원칙은 철저히 지켜져야 하며 소득 많은 사람이 세금을 많이 내야 하는 원칙은 상식이 되어야 한다. 그렇지 못할 때 중산층은 배신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최근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국무회의 석상에서 중산층이 튼튼해야 경제가 건전한 발전을 이룰 수 있다며 중산층보호 대책을 마련할 것을 지시했다고 한다. 지금이라도 중산층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다. 다만 한가지 우려되는 것은 역대 정권이 한결같이 중산층 보호에 관심은 표명했으나 실천은 없었다는 점이다. 중산층 보호는 결코 말잔치로 끝나서는 안될 일이다. 중산층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예종석<한양대교수·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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