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손’이 현대를 사사건건 방해했다. 홍콩의 창마대교 건설을 낙찰받았으나 정부의 지급보증을 받지 못해 영국업체에 넘겨야 했다. 산업은행으로부터의 돈줄도 막혀 버렸다. 94년엔 유상증자 대상에 올라 있던 증권사 가운데 현대증권만 유일하게 제외되는 불이익을 당하기도 했다. 오죽했으면 정명예회장이 “경영에서 손을 떼겠다”고 ‘항복선언’을 해야 했을까.
현대는 지금 문민정부 때의 ‘악몽’을 되씹고 있는 기분인지도 모른다. 현대전자 주가조작으로 금감원으로부터 집중 공세를 받고 있는 상황은 6년전과 너무도 흡사하다고 느낄 수 있다.
재계 일부에서는 현대가 ‘괘씸죄’에 걸렸다고 얘기한다. 반도체 인수 협상에서 고집을 꺾지 않는 현대를 ‘길들이기’위해 정부가 채찍을 꺼내 든 것 아니냐는 것이다.
‘특정재벌과 정부의 불화―압박’시나리오는 우리에겐 너무도 익숙한 ‘옛 풍경’이다.
그러나 이같은 시각은 문제의 본질에서 벗어나 있다. 현대의 주가조작은 누가 뭐래도 명백한 범법행위다. 특히 국민기업이라고 자부심을 갖던 현대이기에 그 책임의 무게는 더욱 크다. 현대는 괘씸죄를 거론하기에 앞서 깊은 자성이 필요하다.
이와 함께 정부도 ‘빅딜 압박용’이라는 등 이번 사건을 둘러싼 세간의 분분한 논란을 새겨볼 필요가 있다.
정부와 재벌의 관계를 놓고 ‘밀월’이나 ‘불화’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좋지않다. 더 중요한 것은 정부의 시장주의가 필요할 때만 꺼내 쓰는 편의품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이명재<정보산업부>mj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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