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공공개혁」 허망하다

  • 입력 1999년 4월 12일 19시 46분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을 비롯한 정부여당측이 ‘재벌개혁 가속화’를 다짐하지 않는 날이 없는 요즈음이다. ‘재벌개혁 부진’에 대한 외국으로부터의 비판과 경고도 끊이지 않는다. 대외경쟁력 강화 차원의 재벌개혁은 한국경제 재구축을 위한 필수과제다. 하지만 재벌 구조조정과 관련된 외국측 주장에는 자기네 이익을 위한 세계시장전략이 숨어 있다. 또 요사이 정부가 말끝마다 재벌개혁을 되뇌는 데는 순수한 정책의지(意志) 이외에 다른 의도가 개입돼 있지 않나 의심된다. 다른 부문의 개혁이 지지부진하거나 아예 물건너가는데 대한 국민의 불만을 희석하기 위해 재벌개혁을 유난히 강조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재벌개혁은 말로 그렇게 강조하지 않아도 된다. 정부 스스로 시장경제 원칙을 최대한 지키면서 제도적으로 유도해나가면 된다. 또 정부와 공기업 등 공공부문이 자기개혁을 솔선해 국민적 신뢰와 공감을 얻게 되면 재벌들도 반(反)개혁적 행동에 나서거나 그런 꾀를 내기 어려울 것이다. 정부가 작년에 ‘모든 개혁의 성공여부는 정부(공공) 개혁에 달려 있다’고 선언한 것도 그런 인식에 바탕을 두었다고 믿어진다.

그런데 공공개혁이 속속 꼬리를 내리고 있다. 공공개혁 주무부처인 기획예산위원회는 11일 구조조정 실적이 부진한 공기업(정부투자 및 출자기관) 사장에 대한 해임 건의방침을 철회했다. 당초엔 경영혁신 실적이 나쁜 일부 공기업 사장의 해임을 이달중 대통령에게 건의할 계획이었다. 방침 번복에 대해 기획예산위는 ‘조직이 흔들리면 경영혁신이 오히려 지연된다’는 논리를 편다. 말인즉 완전히 틀리는 말은 아니다. 그렇다면 애당초 그런 ‘이치’도 모르고 해임건의 운운했단 말인가. 문책 선상에 오른 사장들의 정치권 및 정부에 대한 로비, 그리고 공동여당 내의 역학관계와 다른 난제들 때문에 공기업을 흔들 타이밍이 아니라는 얘기를 내놓고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당국자들의 얼굴이 너무 두껍다는 생각이 든다. 정부출연기관 구조조정도 통폐합 등에 한계를 드러낸 채, 하는 시늉만 했다. 정부 구조조정은 2차 조직개편의 실패와 각 부처 직제 슬림화의 불발로 그쳤다. 그런 가운데 일부부처는 최근 무더기 승진잔치를 벌였다. 승진 일시동결 계획이 사전에 새나가자 각 부처가 앞다투어 승진인사를 했다는 보도다. 개혁에 대한 집단적 저항으로 부처통폐합 등의 조직개편을 무산시킨 관료들의 잇속챙기기엔 중단이 없다.

이 정권에선 ‘혹시나’ 제대로 될까 기대했던 공공개혁이 이렇게 ‘역시나’로 막을 내려도 좋은가. 정부 등 공공부문의 민간개혁에 대한 견인력 상실이 너무나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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