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준의 삶·예술/근황]병마와 싸우며 전시회 준비

  • 입력 1999년 4월 15일 19시 46분


백남준선생은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 비치의 오션 드라이브에 머물고 있었다. 대서양의 에머랄드빛 파도는 이 길 건너에 있다.

유럽에서 온 팔등신의 미인들이 가슴을 드러내놓고 오수를 즐기는 날도 백선생은 찬란한 햇빛을 받으며 휠체어에 앉아 있었다. ‘마이애미 비치 예술축제 25주년’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흰색 티셔츠에 반바지 차림. 그의 부인 쿠보다 시게코(久保田成子)는 같은 티셔츠에 검정치마차림. 단순하고 명징한 삶이다. 뉴욕의 차가운 공기와 사람들의 빈번한 왕래를 피해 백선생 부부는 겨우내내 이곳에 머물렀다.

하지만 마이애미까지 사람들의 발길은 끊이지 않는다. 기자가 백선생을 만난 날도 면담을 희망한 일행중에는 뉴욕 구겐하임 박물관의 선임 큐레이터인 존 한하트가 끼어 있었다.

구겐하임 박물관은 2000년 새로운 밀레니엄을 기념하기 위한 전시회의 첫번째 예술가로 백선생을 선정했다. 한하트는 이 전시작업을 진두지휘하면서 때때로 백선생의 지침을 받기 위해 이곳까지 내려온다고 했다.

예수의 부활절이었던 96년 4월6일 백선생은 쓰러졌다. 뇌의 한쪽이 마비됐다. 투병생활이 벌써 2년이 넘었다. 방글라데시 출신의 스티브라는 청년이 그를 간호하고 있다.

같은 비디오 예술가로 백선생의 예술적 동지이기도 한 부인 쿠보다는 백선생의 투병생활을 다큐멘터리형식으로 비디오에 담고 있다. 지난해 이 다큐멘터리가 유럽에서 방영돼 호평을 받았다고 한다.

백선생은 매일 휠체어에서 일어나 걷는 연습을 하고 있다. 거리는 3백m정도로 일정하다. 왜 매일 조금씩 거리를 늘리지 않느냐고 묻자 백선생은 “욕심내지 않는다”고 말했다. 말이 조금 어눌해졌을 뿐 정신은 온전했다. 그는 “필요없는 가지들을 잘라냈더니 한곳에 초점을 맞출 수 있게 됐다”고 했다.

그가 사는 거리는 젊은이들의 천국. 낮에는 작열하는 태양 아래서 일광욕과 수영을 즐기고 밤에는 작열하는 조명아래서 음악과 춤을 즐긴다. 젊은 사람들이 인생을 즐기는 것을 보면 부러운 생각이 들지 않느냐는 질문에 백선생은 “젊을 때 다 놀아놔서 아무렇지도 않다”고 명쾌하게 대답했다.

한번 쓰러져본 그는 집착이 없어 보였다. 여생에 어떤 목표를 세우고 있느냐고 물으니 전위예술의 정신적 감화를 미친 스승이자 동반자였던 존 케이지 탄생 1백주년 기념전을 준비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 기념전은 2010년 뉴욕의 카네기홀에서 열린다. 그이후엔? 그는 “그만 하면 됐다”고 했다.

동아일보에 연재될 자신의 이야기가 많은 한국인들이 세계무대에 진출해 세계역사에 기여할 수 있도록 영감을 주는 계기가 될 수 있다면 고마운 일이라고 백선생은 덧붙였다.

〈마이애미비치(플로리다주)〓홍은택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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