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이 나라 과학기술의 현주소는 듣기 좋은 구호들과는 점점 멀어지고 있다. 과학기술의 메카인 대덕연구단지가 구조조정 회오리 속에서 뿌리째 흔들린다. 연구소를 등지는 고급두뇌가 줄을 잇고,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국내에 진출한 외국기업을 찾거나 아예 해외로 떠나고 있다. 이 때문에 반도체 등 어렵게 우위를 확보하기 시작한 핵심분야 기술들이 경쟁국들로 새나간다. 국부(國富)가 유출되는 셈이다.
16개 정부출연연구소와 25개 민간기업연구소가 자리잡은 대덕연구단지에서는 최근 1년새 기존 연구인력의 20%에 육박하는 3천여명이 실직 또는 자의로 이탈했다. 올 들어서만도 4백∼5백명의 고급인력이 빠져 나갔다. 일부 연구소는 개점휴업상태에 빠져 심각한 연구 공백현상을 빚고 있다. 아예 폐쇄돼 잡초만 무성한 대기업연구소도 있다. 정부 집계로는 이 연구단지를 포함해 국내 과학기술분야 연구인력 7만5천명 가운데 적어도 5천명이 1년새 이탈한 것으로 파악됐다. 대덕연구단지의 경우 97년말 1만6천8백여명이던 연구인력이 올해말에는 1만명 선으로 줄어들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다.
연구개발(R&D)투자 축소에 따라 기술인력 처우가 더욱 나빠지고 자리마저 불안정해진데다 연구환경이 열악해 진 것 등이 직접적 원인이다. 작년의 과학기술투자 총액은 97년에 비해 10% 이상 감소했다. 국내총생산(GDP)대비 과학기술투자 비율은 2.66%로 97년의 2.89%보다 오히려 낮아졌다. 한편 김대통령은 과학기술 투자중 정부투자 비율을 30%로 높이겠다고 공약했지만 작년 실적은 25%에 그쳤다.
과학기술 기반이 무너지면 국가의 장기비전이 없다. 기술 우위 없이는 국가 경쟁력을 확보할 수 없다. 기술종속 심화로 경제의 대외의존 구조가 고착화할 뿐이다. 그러잖아도 우리나라의 지식기반 경쟁력은 선진국은 물론이고 싱가포르 대만 등에도 크게 뒤지는 상황이다.
과학기술의 인적 기반 재건을 위한 정부와 산학연(産學硏)의 새로운 각오와 전략, 그리고 실행이 절실하다. 정부는 말로만 ‘과학기술강국’을 강조할 것이 아니라 문제의 소재를 면밀히 점검해 실효성 있는 대책을 실천에 옮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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